| 사는 모양새와 암울한 시국이, 그에 항의하는 민중들의 투쟁과 절망과 그안에서 빚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닮아있는지, 칠레의 상황도 이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그 대상은 다르지만 아무튼 군부는 나쁘다는 생각에 동조를 한다. 낯설기만 한 세3세계 소설에 눈을 돌린건, 그이들이나 우리들이나 똑같이 비슷한 처지에서 문학을 논한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는데 그중 단연 아리엘 도르프만은 눈에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회자되었던 우리집에 불났어란 단편집은 그래서 선뜻 내 손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일견 한국의 최인석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오롯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인데, 그 흔적은 단편 소설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묻어난다. 아직까지 변방의 흔적들을 놓고 환상과 현실의 경계치를 무너뜨리는 최인석이나 언젠가는 승리할 민중의 희망을 상징처리하는 도르프만의 방식은 어쩐지 같은 류라고만 느껴져서 읽으면서도 내내 반갑고 즐거웠다. 우리나라 문학 현실속에서 내가 느낀 운동권 소설과 많이 틀리겠어 하는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그건 서문을 통해 칠레의 상황을 읽고 도르프만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난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니다! 라는 결론이었다. 단편 하나하나 가지고 있는 느낌은 모두 색다른 접근이었는데, 독자에서는 도서 검열관이 한 무명작가의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 거울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태어난 이후 줄곧 자신을 드러낼 한 순간의 빛을 기다리고 또하나의 자기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본문인용) 최악의 상황이 된 조국의 운명을 깨닫고 자신역시 그 역사속의 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상담에서는(이건 개인적으로 참 뛰어난 작품이라다는 생각을 하는데) 고문관과 고문을 받는 양자의 심리상태를 더없이 차분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 의사에게 자신의 비만을 걱정하는 고문관과 한 모금의 물을 마시고자 간절히 그것을 원하는 고문받는 한 의사의 처절한 몸짓을 통해 결국 날아오는 두번째 발길질을 견디게 하는 것은, 그나 나나 돌아서보면 역사의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과 그러면서도 드러날 수밖에 인간의 양면성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느 소설에서는 경쾌하게 빗나가며 쓰기도 했고 또 어느 지점에선 무섭도록 치밀하고 세밀한 묘사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다종다양하고 변위적인 글쓰기의 묘미가 많이 느껴졌던 아리엘 도르프만의 우리집에 불났어는 그래서 종종 문학 텍스트로도 읽힌다고 하니, 과연... 그럴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읽었던 이 책은 1월의 도서목록 첫번째에 올려놓을 정도로 감명깊고 다양한 색채로 다가왔다. 칠레의 군부와 거기에 항의하는 부단한 민중들의 투쟁을 과격한 언어와 투쟁상의 그리는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의 극한 상황속에서 취할 수 있는 애절한 행위 혹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칠레의 군부와 그에 부응하는 자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었다고 생각된다. 상황은 많이 다르고 추구하는 지점역시 많이 다르겠지만 역사속에서 이루어지는 한가지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자는 것으로 귀결될 듯한데, 아리엘 도르프만의 작품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질문은 작가 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선명히 각인되어지곤 한다. 그래서인가, 우리집에 불났어란 단편집 속에는 유난히 빨간 줄이 많이 그어져 있고 깨알같은 글자들이 납작 엎드려 있는 곳이 많다. 참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
|
'박하사탕'은 시원하게 말하지 못했던 20년 동안의 아픈 이야기를 차근차근하게 되집어간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특히 같은 시대를 겪어온 386세대들이 많은 눈물도 흘리고 좋은 영화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90학번 이후 세대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관객들로부터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적 장치가 부족하였고 주인공 역을 맡은 설경구의 부담스런 표정연기도 관객과의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관객들을 먼저 슬프게 한 다음 나중에 생각하게 '박하사탕'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주인공 개인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보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슬퍼하게 만들고 무력한 주인공의 운명은 우리의 폭력적인 현대사에서 비롯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칠레의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작품집 '우리집에 불났어'는 먼저 느끼게 한 다음 나중에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박하사탕'보다 충실합니다. 아리엘 도르프만 역시 칠레의 현대사 속에서 상처를 받은 개인의 이야기를 전 작품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에서는 악명높은 검열관이 무명작가의 소설 때문에 적에서 동지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으며 '뿌따마드레'에서는 미국에 하루동안 머물게 된 해군사관생도들이 여자와 섹스를 하기 위해 결국 강간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마초적 기질과 반공사상으로 무장된 칠레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상담'에서는 고문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과 다이어트 방법을 고문받고 있는 의사에게 천연덕스레 묻는 중위가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이 '적'이냐 '동지'이냐 편가르기가 아니라 모두 역사의 파도 속에서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개인들이란 점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을 만나며 슬퍼하기도 하고 분개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칠레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되고 왜 피노체트가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힘없는 노인을 단죄해야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칠레를 전혀 모르는 서울 한 구석에서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문학작품만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정말 슬프고 아름다운 제2의 '박하사탕'을 만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해설에 대해 한 마디. 역자인 한기욱씨가 '망명지에서 꽃피운 상상력의 연대'라는 제목을 붙인 해설은 아주 훌륭합니다. 칠레의 현대사와 함께 작가를 소개하고 있어 작품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각 작품에 대한 역자의 꼼꼼하고 명쾌한 해설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읽기 전에 해설을 읽는 누를 범하진 마시기를!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이요?" 당신은 듣는다. 나도 듣는다. 세밀하게 고안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목소리를 우리 모두는 듣는다. 아이를 공포에 질리지 않게 하면서, 아이의 순진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감옥보다 더 음습한 곳들이, 총알보다 더 가혹하고 예리한 것들이, 목을 감는 밧줄보다 훨씬 더 나쁜 뭔가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강하게 하고, 삶을 위한 준비를 하게 하고, 아이의 무지를 없애면서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문제로 아이의 정신을 억누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아이가 해서는 안될 질문을, 물어서는 안되지만 마땅히 대답할 만한 질문을 할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