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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이 바라본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의 기억을 쫓아가다 참람한 기억들을 들춰내고 그것을 기록으로 옮긴 것이다. 할머니는 전쟁에 관해서는 모른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들도 전쟁을 했던 그 사람의 상처와 같이 살았고, 그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할머니의 얘기도 담고 싶어 한다. 같은 여성이기에 할머니가 전쟁에 미친 내용을 저자는 마음 깊이 새겨 생각의 범주에 두고 있다. 이 글은 그런 이야기들 속에 민간인 학살이라는 키워드를 잡고 현장 조사를 실시해 픽션 형태로 담아내었다. 이런 일들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참람한 일이다. 가장 존엄해야 할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마무리 잘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 현장에서는 그런 참혹한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가해자 당사자들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집행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행했던 일들은 그냥 간과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명령이라고,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정당방위라고, 그것이 해결책이라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치룸에 있어 최소한의 도의도 저버린 일이었다. 무척 무서운 일이고, 가슴 저미는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4명의 여성 영화인들이 다큐로 찍어 보이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에 알려 피해자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깔려 있는 내용이다. 여성들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지만, 그렇게 무참하게 생명을 잃어야 했던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야기는 위령탑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실제 조사를 위해 해마다 열리는 추모제에 참여해 보기로 한다.
하미 학살 위령비 건립에 얽힌 이야기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의 ‘협상적’ 태도를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 이전에 내가 울컥했던 이유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넘어, 이 대리석 벽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연꽃 그림을 보게 된 후로 나는 어떤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도록 가두려는 마음에 대해서, 그 마음은 현재의 내가 20세기와 완전히 선을 그을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이었다.
2014년 저자 중의 한 사람인 곽소진은 연꽃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을 보면서 그 너머의 세계를 보는 눈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마음에 담고, 그것이 무엇이라도 밝히며 진실을 추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그것이 이 다큐를 찍는 일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럼으로 그들의 아픈 진실에 다가갔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살상이었다. 6.25 때 우리도 그런 일을 많이 겪지 않았는가? 역사적으로 전쟁 때마다 아픔을 겪으면서 목숨을 내어놓은 것은 애꿎은 백성들이 아니었는가? 그것은 밝혀져야 할 일이었고, 다시는 재현되지 않아야 할 일이었다. 그것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우리들 선조의 일로 다가왔기에 저자를 비롯한 우리들도 아프지 않나 생각된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어. 한국군이 사방을 가로막기 시작하더니 막 때리면서 시장에 못 가게 했어. 어머니는 아이를 먹일 쌀을 사려고 지게를 짊어지고 시장에 가던 중이었는데, 한국군이 사방을 포위하고 총구로 막 때리는 바람에 지게를 지고 돌아왔어. 시장에 못 가게 다 돌려보냈지, 자기들 멋대로. 어머니가 말씀하셨는데 그 뒤에 하미의 네다섯 군데로 사람들이 모였어. 지금 위령비가 있는 곳에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했어. 거의 여든 명 정도 있었지. 나머지 네 곳에 흩어진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139명이야. 하미에 사람들을 그렇게 다 모아놨었어.
당시 사건이 일어날 때 다낭에서 일을 한 관계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럽 아저씨의 말이다. 집을 뒤지면서 한국군들이 총을 쏘면서 다 나오라고 소릴 질렀다고 했다. 수류탄이 터지고,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했다. 전쟁이 계속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한 방책으로 집들이 땅 속에도 있고, 굴도 많이 뚫었다. 그런 것들이 전쟁을 치루는 병사들에겐 두려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리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어린아이, 여성, 노인 등 비전투원도 예외가 없었다. 그것은 학살 사건이지 전쟁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살아남은 당사자들의 심리적 상황이 어떨까? 그들이 살아남아 지내온 세월은 어떨 것인가? 그 심리적 고통은 말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또 이런 이야기도 적혀 있다. 여성들이기에 이쪽에도 관심을 가진 듯하다. 군인들은 현지의 여성들과 지내는 시간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소 전선이 교착 생태가 되고 하면 평소엔 예쁜 여성들은 군인들과 사랑 놀음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2세들도 더러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군인들이 돌아갈 때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몸만 비행기에 실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무척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1,2차 세계 대전 즈음에 일군들이 행한 일련의 일들이 마구 떠오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현지의 민중들에게 영육 간에 뼈아픈 상처를 주게 되는 모양이다. 남겨진 그들의 슬픔은 한국 쪽을 쳐다보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군인들이 베트남을 떠날 때 이들 자녀들에게도 자비가 없었다. 당시 한국의 군인들이 도의적으로 아파해야 할 일이다. 살아남은 베트남인들은 그 아이들도 잘 키우면서 성장하여 한국과 교량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들도 내비친다. 읽으면서도 가슴이 먹먹하다.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파병 참전용사들의 기억을 통해 그날에 다가가는 시간들이 있었다. “한국군의 학살로 저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어 고아가 되었고, 탄 아주머니는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동생 등 가족 5명을 잃었다. 그리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탄 아주머니의 작은 아버지가 남베트남의 군인이었다. 마을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베트남 병사의 가족이었다.” 이들이 무슨 죽을 일을 했는가? 오히려 한국을 도우는 세력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종전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해 아픈 그때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전쟁이라는 괴물을 증오해도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는 마음을 내비쳤다. 참으로 고통을 삭인 처절한 아름다운을 보여주는 베트남 피해자들의 모습을 만났다. 그것은 화해와 치유의 몸짓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영화인들에 의해 낱낱이 그려진다. 아무래도 당한 사람이 있고, 그들의 입장에서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가해자의 나라, 딸들이 진실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멋지다. 많은 조사와 많은 증언들이 글을 더욱 빛나게 한다. 전쟁의 상흔이 처절하게 마음에 다가오게 되는 영화고 글이다. 이런 일들이 전쟁이 일어나는 너무나 빈번하게 일어나기에, 있어서는 안 될 다짐을 해보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쟁이란 참으로 마귀와 같은 것이다. 전쟁은 소속된 사람들에게 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광기에 사로잡히게 한다. 광기에 빠진 사람들에겐 아무런 이성적인 제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압만이 해결책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기억하기도 힘 드는 일들이다. 당시 그곳에서도 그런 광기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런 광기의 일들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참혹한 시간을 가졌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기억들을 읽었다.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멀리 외국인들의 전쟁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우리들도 이랬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아팠다. 상황이 그렇게 되면, 지도자가 시킬 때 거기에 자신의 감정이 조금 더 개입되어 이런 일들이 생겨나지 않을까도 생각된다. 이성이 마비된 전쟁터다. 그런데 그 마을은 전쟁터라고 하기엔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날도 먹고 사는 걱정 때문에 시장에 쌀을 사기 위해 나가는 길이라 했다. 잡혔고,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고 한다. 눈물 없이는 정리가 되지 않은 책이다. 그들의 삶이 안타깝게 밀려든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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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을 다루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진들이 제작 과정을 엮어낸 책이다. 처음부터 이길보라 감독을 포함해서 함께 작업했던 3명의 제작진과, 후반에 새롭게 합류한 조소나 프로듀서 등 모두 4명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서술되고 있다. '월남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가 살아생전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경력을 자랑스러워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이길보라 감독은 그것을 기화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를 통해서 할아버지의 참전 이유가 이혼 비용을 벌기 위해서였고, 농아인 아들 즉 감독의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계기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의 기억과 함께, 전쟁의 뒤편에 서 있었으면서도 '공적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할머니의 기억을 추적하려는 의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감독은 밝히고 있다. 이후 제작팀을 꾸려 베트남을 찾아서 당시 참전했던 한국군들에 의해 여러 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살아남은 이들이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증오비'를 세운 것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음력설을 전후해서 베트남 곳곳에서는 당시 희생되었던 이들에 대한 제사와 위령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기사와 방송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 중에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이 한국에 와서 마주쳤던 장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베트남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그들이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양민 학살에 대한 증언'을 하러 온 장소에 나타나, '학살은 없었으며 베트콩 가족은 베트콩이기에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외치는 이른바 '참전용사'들의 집회를 목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참전했던 이들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했던 생존자들에게 그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라 이해된다.
그때의 심정을 담아 쓴 편지의 다음 구절이 그래서 아프게 다가왔다. "저희들이 행사장 앞에서 여러분 중의 한 분이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전해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적군의 가족 역시 적군이라고 하셨더군요. 그렇다면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맞서 싸운 의병이나 독립군 가족을 일본군은 모두 죽여도 되는 것인가요?" 이른바 '참전용사'들의 주장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오랫동안 그릇되게 전해지던 논리였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존재하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가해를 하지 않았다는 논리, 그리고 설혹 ‘희생’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당시에는 불가피했다는 주장들이 바로 그것이다.
멀게는 갑오농민혁명 당시 이른바 '동비'라는 명분으로 관군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일본 군대에 의해 희생된 '제암리 학살사건' 등이 떠오른다. 물론 '한국전' 당시의 남과 북 그리고 미군에 의해 희생된 양민들도 있으며, 제주 4.3사건이나 여순사건 당시에 희생된 양민들도 그동안 이념적 잣대로 인해 제대로 진실이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은 여전히 '발포 명령'은 없었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일부 집단에서는 이것을 이념적인 문제로 몰고 가서, 수많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희생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서슴지 않게 자행하고 있음을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베트남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역사의 진실은 그저 외면한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라도 명확한 사실을 밝히고 가해자가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으로부터 그 상처는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모순된 역사적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전쟁증적박물관'이라고 명명했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을 기념한다는 의미로 '전쟁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겐 잊혀졌던 사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살아가는 내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를 둔 이길보라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마을을 찾아, 당시의 생존자들을 찾아 화면에 담는 영화가 기획되었다. 당시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3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전쟁의 형상을 찾는 작업이었다.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혼자서 살아남은 이들이 당시를 증언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촬영과 편집 작업에만 5년이 넘는 기간이 걸린 영화 <기억의 전쟁>은 2020년 2월 개봉이 예정되었으나, 당시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은 관객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예정대로 개봉을 했지만, 코로나19의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일찍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이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담아 엮어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그동안 우리들이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베트남전쟁에 대한 모습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생존자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우리 현대사의 모습도 함께 겹쳐 떠올랐던 것이다. 여전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선명하게 대립하고,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당당함으로 인해서 피해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우리 현대사에도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에 특별법이 통과된 '제주 항쟁', 최근 국회에서 입법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여순사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여전히 가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광중민주화운동' 등등.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래 전 '월남파병용사'를 자처하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던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베트남 현지에서는 무고한 양만들이 학살되었고, 그 현장에는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증오비'가 곳곳에 세워져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생존자 중의 한분이 이야기 했다는 이런 구절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한 일은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한 일은 아버지가 책임져야 한다!" 즉 이 말은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을 때 피해자들의 용서가 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서 영화가 제대로 상영될 수 없었고 많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상황이 좋아져 다시 영화관에서 상영되어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억으로 남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삶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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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베트남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단지 얼굴만 바꿨을 뿐이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전쟁 중이다. "기억의 전쟁"을 책으로 쓰는 지은이들에게 다가 온 베트남, 기억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를 쓴다. 책을 마무리 하던 중 한전이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은이들, 베트남의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 한국의 환경활동가들이 자국에서는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면서 외국으로 오염원이 될 에너지 사업을 수출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착취이자 생태학살이라며 연대를 요청했다. 1960년대 학살, 그리고 2021년의 되풀이 되는 학살, "생태학살"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전장에 무차별 살포한 고엽제 피해, 이제 얼굴과 형태를 바꿔 새롭게 등장한다.
원고 응우옌티탄, 피고 대한민국 정부,
2020년 4월 1일, 응우옌티탄은 베트남 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사건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코로나재난 상황이라 한국에 입국하기 어려워, 그 대신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가 중앙지법에 접수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인정만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랍니다(응우옌티탄의 영상증언) 이 책은 가해자의 기억이다. 지은이들은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민간학살 문제를 같이 다룬다. 여성의 눈으로, 전쟁의 기억 속에 여성들... 이 책은 많은 쟁점과 따져봐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영화에서 말하지못한 것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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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해야 할까.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이자 고엽제 피해자인 할아버지를 둔 이길보라 감독이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을 찾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촬영감독, 프로듀서 2인 이렇게 4명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갔으며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영화 제작의 시작점부터 개봉 이후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며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미 작년에 (코로나19 시국의 직격탄을 맞아버렸지만) 개봉한 영화라 아쉽지만 당시 영화를 관람하지 못한 이들이 책을 먼저 접하는 것도 충분히 좋겠다 싶다. 나 역시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다 서평단 모집 기회로 책이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영화관에서 관람하지 못했던 건 여전히 아쉽지만) 책으로 영화를 만든 과정과 감독과 프로듀서가 어떤 태도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만났는지, 어떤 부분을 특히 주의해 촬영했는지를 상세하게 알 수 있어 좋았다. 아래 인용해놓은 부분에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정부의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라는 말이 베트남 중부에 다녀오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직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미래로 나아가자니. 베트남 이야기를 영화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인공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사람들은 어떻게, 얼마나 들여다볼 것인가. 카메라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어른들은, 인간은 얼마나 오만한가. 나는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p.58 이길보라
2015년 평화기행에 동행한 여러 취재진이 있었다. 이 중 증오비와 집단 무덤 앞에서 묵념을 하는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지 않았던 팀은 <기억의 전쟁> 팀이 유일했다. 평화기행에 함께한 취재팀은 참가자임과 동시에 각자의 매체에 베트남 중부의 이미지를 전송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중략) 카메라를 내려놓겠다는 결정은, 내 독단이 아니라 감독과 프로듀서가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p73-77 곽소진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베트남 하면 떠올리던 것. 다낭, 하노이, 호이안 같은 여행지. 반미, 포, 분짜, 반쎄오 같은 맛있는 베트남 음식. 베트남 여행을 꿈꾸며 베트남의 주요 여행지와 가서 꼭 먹어야 할 것들, 비행시간과 비행기 삯은 어떻게 되는 지도 알아본 적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군이 자행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궁금해하며 찾아본 적 없다. 모르진 않았다. 자세하게는 아니라도 '그런 일이 있다더라'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지냈다. 그랬는데…
베트남에 다녀와서 좋았다.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한날한시 무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에 함께해서 좋았다. 해가 진 뒤 불어오던 바람, 그 마을 어딘가에서 그 기억을 안고 살아온 할머니의 손을 맞잡았을 때 느껴지던 온기와 같은 것, 아주머니, 아저씨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기억한다. 논에 핀 하얀 꽃들과 소를 치는 어른들과 논일, 밭일, 집안일하는 생생한 모습들을 기억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전쟁이, 거기서부터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p63-64 서새롬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위에 실어둔 인용구에서 관광이 아닌 평화기행을 떠난 이가 '베트남에 다녀와서 좋았다.'라고 말한 문장이 깊이 와닿았다. 더 이상 베트남을 한 번 여행 가고 싶은 나라! 정도로만 생각할 수는 없게 됐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끔찍해서 되려 어렴풋한 전쟁과 학살의 끔찍함이 사람에게 남기는 상처가 어떤 모양과 깊이일지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짐작해 본다.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이들에게도 생생한 온기와 고유한 삶의 역사가 있었다. '피해자'라는 이름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삶의 색깔. 전쟁이라는 거대한 명분으로 이 모든 고유한 삶이 묻히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됐다.
1968년 이른 봄, 정월 24일에 청룡부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 선량한 주민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학살을 저질렀다. 하미 마을 30가구, 135명의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고 마을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모래와 뼈가 뒤섞이고 불타는 집 기둥에 시신이 엉겨 붙고 개미들이 불에 탄 살점에 몰려들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불태풍이 휘몰아친 것보다도 더 참혹했다. *비문 집필자: 작가 응우옌흐우동, 출처:한베평화재단
고자이 마을에 세워진 위령비에는 380명의 희생자 명단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데 '무명'이라는 뜻의 '보자인(Vo Danh)'이라는 이름이 많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처 이름을 붙이지 못한 아이들과 이름을 찾지 못한 시신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베트남 중부의 수많은 위령비에는 수많은 '보자인'이 있다. (중략)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베트남 중부에는 증오비만 있는 마을도, 위령비만 있는 마을도, 둘 다 있는 마을도 있다. (중략) 증오비가 선 곳은 한국 사람들이 들어가기 어렵다. 여전히 그들에게는 증오가 있기 때문이다. p.69 곽수진
끔찍한 역사 속 무참하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있는 나라, 학살을 자행한 주체가 한국군이라 한국인은 출입할 수조차 없는 지역이 있는 나라가 베트남이었다. 그걸 오래 몰랐다. 정확히는 알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싶었던 마음에서였을까?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겪은 일은 그 누구라도 겪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2021년이 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베트남에 있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는 커녕 학살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버젓이 살아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는데도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그런 일은 없었고 관련 자료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던 5년간, 탄 아주머니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다소 수동적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하던 얼굴이 다른 이와 연대하고 행동하는, 나아가 한국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발언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중략) 그렇게 탄 아주머니가 내어준 마음으로 5년간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와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p265 이길보라
응우옌티탄 아주머니가 직접 한국에 가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의 용기를 생각한다. 가족을 다 잃는 고통을 겪은 아주머니가 감독의 할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군인임을 알면서도 감독에게 밥 한 끼를 더 먹이려고 했던 순간의 따뜻함을 생각한다.
흔히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피해자에게 '항상 원망과 증오에 차 있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이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차마 글로 쓰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피해를 입고도 생생하고 따뜻하게 살아 있고(혹은 살아 내었던) 피해자들의 삶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베트남전쟁에 대해서 외면할 수가 없다. 한국 정부로부터의 사과를 받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와 증언을 하고 서명을 모은 피해자들을 두고도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어떤 관객은 물었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정확한 해결 방식은 뭐냐고. 명확하고 확실한 해결 방안은, 기억의 방식은 없습니다. 다만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 그 얼굴에 응답하는 것, 그 얼굴이 말하고자 했을 때 마음을 다해 듣고 기억하고 전달하는 것, 그것이 제가 탄 아주머니의 얼굴을 마주하며 배운 것입니다. 기억해주십시오. 소장은 문자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이들은 얼굴을 가지고 생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p265 이길보라 (*응우옌티탄의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한 손해배상 청구 소장 접수 관련 기자회견 후 연대 발언)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베트남전을 기억하는 방식. 피해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것, 잘 듣고 기억하고 다른 이들도 들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 그 모든 폭력을 겪은 피해자에게 모두가 해주어야 할 일이지만 잘 한 적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씁쓸했지만 나는 더 잘 기억하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트남 생존자든 한국 참전군인이든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자신들의 희생을 사회가 알아주는 것이다. 그들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국가가 인정한 뒤에야 그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것이다. 두 피해자가 화해의 길을 걷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p288 응우옌응옥뚜엔(통역사)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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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나는 이제서야 영화를 다 봤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더 많은 이들이 '영화와 함께'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남성이 아닌 이들이 전하는 베트남 전쟁과 당시 학살 기억은 수많은 다른 피해자와 폭력을 연상시킨다. 책을 통해서 확장할 수 있는 담론이 무한한 만큼, 책을 통해서 얻어갈 수 있는 것도 무한하다. 기억을 지우려는 이들에 의해서 미처 기억으로 남겨지지 못한 이야기. 그 안에서 제작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영화에 넣었으며, 다른 어떤 것들을 영화에 넣지 못 했는지... 책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절망스러운 얼굴로만 비춰지는 납작한 피해자가 아닌, 전쟁 이후에도 50년의 삶을 일궈온 생존자들은 훨씬 입체적인 얼굴을 갖고 있었다고 책은 옮기고 있다. 책과 영화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기록되고, 무엇이 기록되지 못하는지 담고 있다. 그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관한 해답은 독자에게 달려있다. 영화도 다 보고 책도 이미 덮었지만 책은 계속 마음에 남아 내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현대 사회 여성과 소수자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품고 있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마음에 남아 부지런히 말을 거는 책이다.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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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학살, 가해자와 피해자.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나에겐 참 멀게 느껴지는 단어다. <기억의 전쟁>은 그런 낯선 단어를 모아 여성, 비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과 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 영화를 만든 4명의 제작자들이 2015년부터 영화가 상영 된 2020년까지 적어둔 제작 과정이 같은 이름 <기억의 전쟁>으로 출간되었다. 4명의 여성 제작자들은 영화를 찍기 위해 스토리를 짜고 카메라를 드는 일뿐만 아니라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가하고 베트남 곳곳에서 진행되는 위령제에 참여한다. <기억의 전쟁>은 영화라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네명의 제작자가 베트남 피해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에 미안해하고 해결하지 못한 죄책감에 몸서리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것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기억은 윤리이기에 기억이 없으며 윤리도 없다. 그렇다면 기억의 전쟁은 같은 말로 윤리의 전쟁이라 바꿔 적을 수 있겠다. 기억이 윤리로 확장 된 순간 인간이란 공동체를 이른 우리 중 그 누구도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의 전쟁]은 알려준다. 기억의 윤리를 지닌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 [기억의 전쟁]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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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책에서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을 어렴풋이 알게 있었고 더 알고 싶던 찰나 <기억의 전쟁>영화 재개봉 소식과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단 신청으로 조금 일찍 받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에 대해 기억을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4명의 영화인들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고 하여 온몸에 바르던 고엽제는 폐와 구강에 종양을 유발하는 독극물이었다.)는 이길보라 작가의 기억들로 시작한다. 1955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고 1964년,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고, 한국은 동맹군으로 참전한다. 약 80개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기억의 전쟁> 두 권의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경제 도약을 이룬 것, 그리고 책 속에서 영화를 본 20대 여성의 말처럼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민족이고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본 나라다. 딱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역사에서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었으니까. 눈앞에서 총을 마구 쏘아대고, 수류탄을 터트려 팔이 잘리고, 머리가 터지고 작은 아기들은 산산조각이 나있는 것을, 가족들의 죽음이 덮쳐오는 순간을 본 산증인들의 끔찍하고 잔혹하고 참혹한 기억들을 마주할 때면 내 안에 작은 전쟁이 일어나 극심한 불안과 슬픔,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학살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우리 국가와는 달리 그들은 증오가 아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책을 읽던 중 영배 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가 한 말은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해야만 해. 근데... 모든 참전 용사들이 그런 건 아닐 거야. 개개인으로 봐줄 필요도 있어. 그리고 옆에 있는 전우가 총 맞으면 눈 돌아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말도 일리 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피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일본에게 사과받기 위해서는 한국이 먼저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과 대가가 있는 사과, 사과받기 위해 사과하는 따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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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책에서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을 어렴풋이 알게 있었고 더 알고 싶던 찰나 <기억의 전쟁>영화 재개봉 소식과 그날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서평단 신청으로 조금 일찍 받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에 대해 기억을 멈추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4명의 영화인들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기억이 되지 못한 그날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루고,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는 고엽제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고 하여 온몸에 바르던 고엽제는 폐와 구강에 종양을 유발하는 독극물이었다.)는 이길보라 작가의 기억들로 시작한다. 1955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고 1964년,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고, 한국은 동맹군으로 참전한다. 약 80개 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기억의 전쟁> 두 권의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경제 도약을 이룬 것, 그리고 책 속에서 영화를 본 20대 여성의 말처럼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민족이고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본 나라다. 딱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다. 정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고,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역사에서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었으니까. 눈앞에서 총을 마구 쏘아대고, 수류탄을 터트려 팔이 잘리고, 머리가 터지고 작은 아기들은 산산조각이 나있는 것을, 가족들의 죽음이 덮쳐오는 순간을 본 산증인들의 끔찍하고 잔혹하고 참혹한 기억들을 마주할 때면 내 안에 작은 전쟁이 일어나 극심한 불안과 슬픔,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학살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우리 국가와는 달리 그들은 증오가 아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책을 읽던 중 영배 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가 한 말은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해야만 해. 근데... 모든 참전 용사들이 그런 건 아닐 거야. 개개인으로 봐줄 필요도 있어. 그리고 옆에 있는 전우가 총 맞으면 눈 돌아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말도 일리 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피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일본에게 사과받기 위해서는 한국이 먼저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과 대가가 있는 사과, 사과받기 위해 사과하는 따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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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감독을 알게되고 이 다큐는 어떻게 볼 수 있지? 궁금해 하던 찰나에 다큐와 연결된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읽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은 32만명을 파병했다. 이는 곧 한국 경제발전과 성장의 서사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기억하는 베트남전은 반전, 평화시위를 촉발한 역사였는데 한국은 오롯이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전쟁참여였다. 그래서 거기서 끝인줄 알았다. 이길보라 감독을 알기전에는.. 군인대 군인이 싸운데서 그친것이 아니라 한국군은 민간인을 대량학살했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해서 나라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우린 피해자의 역사는 배우지만 가해의 역사를 배우진 못했다. 읽다가 멈추기를 몇번, 묵직함을 감당하며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다큐영화의 제작과정과 영화내용을 책으로 기록함으로서 제작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다큐를 만들기 시작했고, 과정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디테일하게 알 수 있어서 출판 자체가 감사했다. 나는 독일의 나치 역사에 대한 반성에 관심이 많은데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후대에게 역사 잘못을 계속 가르치고 반성하는 노력을 해서이다. 줄곧 일본도 좀 반성해라. 외치다가 정작 한국의 가해역사를 마주치자 더욱 알아봐야겠다는 충격적 현실. 베트남은 공산국가라 나라에서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정책으로 개인의 역사는 가리는 중이다. (한국도 그러한듯.) 외교만 생각하겠지... 그럼에도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베트남인들은 끊임없이 증언하고 증언하기 위해 한국에도 온다. 학살현장에서 가족이 죽는 것을 보고 겨우 살아난 응우옌펀런이나 탄의 글을 읽다보면 아.. 머리숙이게 된다. 단순히 분노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과하고 용서하자는 그들의 말이 너무 대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증언하러 왔을 때 참전군인들이 시위를 하는 것을 본 베트남인들은 말한다. "마음속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학살을 인정해야 한다." 사과는 베트남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참전했던 군인을 위해서, 한국을 위해서 해야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학살 마을 중에는 한국군에 대한 증오비가 있고 한국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들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우릴 미워하는데 피해자는 여전히 아픈데 가해자는 가해한 줄도 모르는 중이라니... 아. 마음이 아프다. 다큐 찍은 조소나 프로듀서는 말한다.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섣불리 사과부터 하고 보는 건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은 어떨까" 기억의 전쟁. 다큐영화도 개봉을 했다. 채고가 함께 보면 더 깊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겠다. 활자로 천천히 스며들게 읽고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이라는 물성으로 다큐를 읽어서 참 좋았다. 아직도 한국의 사과는 공식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는 학살피해자들... 다큐를 만들기 시작하고 우리에게 알려준 감독과 팀에게 지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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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만들고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쓴 영화감독 이길보라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은 <기억의 전쟁>. 이 책은 저자가 만든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담고 있다. 함께 영화를 만든 곽소진, 서새롬, 조소나가 공저자로 참여했다.
영화 촬영 기간은 공식적으로 5년이지만, 영화의 바탕이 되는 기억들이 쌓인 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이길보라 감독의 할아버지는 베트남 전쟁 참전군인이었다. 고엽제 후유증으로 암 투병까지 했지만, 할아버지는 평생 자신이 참전 용사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몇 년 후 저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 당시 뭘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하는 수없이 할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드렸는데, 그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할아버지가 참전을 택한 이유를 알게 된 저자는 더 이상 베트남 전쟁이 자신과 무관한 역사적 사건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전쟁이라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 '정상적인 남성'에 의해 가해지는 여성,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및 혐오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저자는 베트남으로 직접 가서 베트남 전쟁 피해자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죄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증오부터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고, 두려워하며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마을에는 베트남 양민을 학살하는 한국 군인의 모습을 담은 동상이 있었고, 어떤 마을에는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있었다. 그 사이를 잇는 것은 무덤 또 무덤... 한국인들이 덕분에 큰돈을 벌어서 잘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베트남 전쟁의 이면에는, 기억되지 못한 죽음과 기억을 지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파렴치한 모습이 있었다.
아직 영화를 못 봐서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가까운 시일 내에 영화를 보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을 생각이다. 그때는 이 책에 적힌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에 더욱 사무치겠지. 사무친 문장들이 역사를 위로하고 현실을 바꾸는 동력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