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의 노벨라를 읽고 영국의 정치에 관심이 가던 중 ‘정치는 팀킴’의 한 패널이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1992)을 언급하셨다. 저자는 영국 시민 교육의 표본이 된 크릭 보고서를 작성했고 조지 오웰 평전을 쓰기도 했다(이런 방식으로 뻗어나가는 앎을 사랑한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이재명을 높이 보게 된다. 각종 걸려들기 쉬운 함정, 즉 정치 이론의 문제들을 피해가며 정치 ‘행위’를 증명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재명을 더 크게 쓰고 싶었다. 아끼는 마음에서 그랬다. 계양을 게양한 이후의 발품은 거의 눈물겹다. 0.7%가 그에게 얼마나 간절했는지가 그대로 전해진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과 울분이 있을 텐데도 대선에서 심판했으니 지선에서는 일꾼을 뽑자고 유권자를 설득한다. ‘정치를 옹호함’에서 신발을 신어본 자만이 어디가 꽉 끼는지 안다고 말한다. 이재명은 왜 정치를 하는지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분명한 행정가 출신의 현장 통치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무한 책임을 지고 지선에 임하겠다고 국민 앞에 선언했다. 지난 대선에서 과연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한마음으로 뛰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박들과 단무지들과 사과맛 수박들의 교란과 이기심을 당원들이 똑똑히 보았고 계속 지켜보는 중이다. 지금도 극소수의 의원들만이 여러 명의 몫을 소화하며 직무를 다하고 있다. 대선처럼 지선에서 분탕질을 하고 현수막 등의 선거 활동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라면 파란 점퍼와 배지를 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민심을 읽고 지역 구석구석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이재명을 보며 또 다시 울컥한다. 술집에서 술에 취해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국민도, 심지어 지지자인 척 붙어 어그로 방송을 하는 일베 유튜버도 배제하지 않는다. 초심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달래고 포용할 줄 아는 큰 그릇이다. 대선 때 보였던 끔찍한 네거티브(비방용) 깎아내리기와 조중동의 낚시질에 또 시동이 걸렸다. 도대체 얼마나 잘못이 많으면 저리 견제하는지 국민들은 그저 한심하고 우스울 따름이다.
나의 걱정과 불쾌감과 불길한 예감은 온전히 굥의 태도가 부른 것이다. 그는 공약을 파기하고 용산을 뜬금없이 점령하고 나섰고 출퇴근하는 1호 대통령이라는 이상한 언론의 마사지를 받는 중이다. 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는 독불장군식 처사와 위법자임에도 수사나 제지조차 받지 않는 측근들, 그리고 민생 현안을 돌보지 않고 차기 정권의 영속성만 살피니 도저히 신뢰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다. “정치란... 훨씬 소박하고 단단하며, 쉽게 만들 수도 있고 쉽게 부서지기도 하는 그런 것(199)”인데 말이다.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는 취재와 보도 정신은 오간데 없는 레거시 미디어들(음흉한 거래)은 굥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바보 취급한다. 이제 막 출범한 정부가 안은 문제가 이렇게 많아도 되는가. 그것도 국민의 40%의 표로 당선된 자가 계속해 국민 갈라치기에 나서니 심히 안타깝다.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 다문화 국가에서 통치자가 민중을 하나로 통일화one people하려는 무모한 짓을 한다. “인간이 특정한 내용을 담은 파일처럼 취급되면 ‘국가는 단지 파일을 담은 캐비닛(레닌)’이 되는(178)” 줄도 모른 채. 주위에 널린 자유를 국민이 거둬 쓰도록 그냥 두면 되는데 그것을 창출하겠다니 냉동 국정이 아닐 수 없다. 예술과 문화와 사랑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감안하지 않은 고릿적 법과 꽉 막힌 사고와 미적 무감각을 어디 국민에게 자꾸 들이대는가. 정치철학자인 패널이 ‘정치를 옹호함’을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법치’와 ‘정치’를 구분 못하는 사태가 불러온 파국이 자명한 까닭이다. 다양한 의견들과 조직들과 이해관계들을 경청과 대화를 거쳐 조정하여 협의를 이끌어내는 정치 기예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인은 국민이 선출한 임시직으로, 부여한 권한 안에서 국민의 대리자여야 한다. 개인으로서 가졌던 아집과 오만과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국민의 지지와 신임을 평화롭게 얻을 고민을 해야 하는데, 원래 살던 방식과 제 식구만 감싸고 그들로 포진하니 유치하고 병적이다.
혹시라도 지선의 책임마저 이재명에게 떠넘기려고 작당 모의 중인 수박들과 국민의 짐은 정신 차리길 바란다. 민주당 내 육십대 위주의 정치판이 흔들리고 있고, 정치를 통해 성장하는 긍정적인 정치 참여와 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유럽의 68혁명을 겪지 않았고, 노동당이나 사회주의당이 선방한 적 없는 분단국에서 치르는 특이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젊고 생명력이 넘치는 정치로의 이행에 초치지 말라. 그리고 굥정부는 ‘선택적’ 국민 운운과 굥정 쌍식을 비롯하여 마치 해답을 가지고 있는 양 국민을 ‘개조’할 억지와 무지의 검을 당장 치워라. 정부의 임무는 “국가라는 배를 단지 ‘물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것(196)”이다. 딱 거기까지다. 거짓 찬가와 눈가림에 놀아날 국민들이 아니니 주변(개뼈다귀를 노리는 장사꾼과 사기꾼)과 뒤에 선 자들을 보라. 위임 받은 권력 내에서 국방과 외교와 민생이나 잘 챙기고 선을 넘어 민주주의의 안전과 질서를 그르치지 말지어다. 국가는 살아 숨 쉬는 생물이며 정치는 유기적인 관계로 생명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나 몰라, 혹은 내가 다 알아 라는 법꾸라지 식의 반정치 수사를 중단하라.
잘 통치한다는 것은 피치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관리한다는 뜻이며, 그들의 이해관계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면 정치적 주권기관을 통해 그들이 대표되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