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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1994년 8월 28일에서 1995년 1월 16일까지 작성한 일기를 모은 산문집이다. 1995년에 발간되었으며 며칠 후 출판사 난다에서 같은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일기의 대부분은 ‘미국 아이오와주 아이오와 시티 아아이와 대학에서 주최하는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하며 작성하였다. 프로그램은 3개월 과정이고 이후 필요에 의하야 한 달 보름여를 더 미국에 머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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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의식의 문제, 소통의 문제
자의식 과잉의 전혜린의 글을 자양분으로 삼으며 자랐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바이블 같았던 젊은 날. 그러나 언제부터 그런 내면의 소리보다 세상과의 합일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등을 돌리게 되었다.
나는 이제 최승자의 시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그의 시만큼은 아니지만 <어떤 나무들은> 시인의 내면을 잘 표현한 시다. 중부 아이오와 시티 아이오와 대학에서 주최하는 Internat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한 3개월 간의 일기. 곳곳에서 자칫 자의식 과잉이 탐지되기도 한데 아슬아슬 잘 비켜난다.
이방의 도시에서 체류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시인의 글 또한 부럽다. '쿨'하게 사는 것이 화두가 된 세상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으며 독자인 나는 얽매이지 않은 삶을 유추하는데 시인은 그 동안의 억눌림에 대해 얘기한다. 미국에서의 체류 경험을 통해 더 이상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시 <악순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게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시집 [즐거운 일기], <악순환> 中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한 것은 어쩌면 시인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는 타인의 대한 관심 아닌 간섭은 많으면서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견해에 나도 동의한다. “모난 돌은 정 맞”고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인도 아는, “우리가 남이가”가 인간관계에서 큰 미덕인 나라, 관음증이 일상이 된 사회 말이다. (하긴 내가 이 책을 읽는 것도 어쩌면 시인의 내면 “들여다보기”의 관음증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이고 마치 인간성 상실의 표상인 것처럼 여긴다. 무진기행의 주인공들이 포장마차에서 나누던 대화가 그랬던가?
하지만 세상에 겁을 먹어 문을 닫아건 시인은 이방의 거리에서는 마음의 문을 연다. 룸메이트와의 생활도 그렇고 잘 모르는 타인과의 전화를 통한 수다도 그렇다. 마크라는 봉사 겸 아르바이트생과도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거나 교감을 나누며 만남을 이어간다.
2. 리딩
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리딩이다. 아이오와라고 하는 도시의 곳곳의 서점이나 세미나 등에서 시나 소설을 ‘리딩’한다는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한다. 심지어는 현재 쓰고 있는 작품들도 리딩한다는 것이다. 몇 개의 화제작을 제외하고는 소설은 이제는 누구도 읽지 않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소설의 서사적 뼈대는 영화대본을 대신하는, 또는 영화대본이 대신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최승자 시인은 소설이 비디오와 문자의 중간선상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언급하며, 문자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IWP 참가 일본인 작가에게 묻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점점 사람들이 ‘읽지 않는’ 소설이기에 처음에는 무의미하고 이상하다고만 여긴 ‘리딩’의 가치를 발견하는 대목이다.
최승자 시인의 이 글을 읽은 얼마 후 우연히 라이프찌히 도서전에 다녀온 소설가 김영하의 글에도 리딩에 관한 이야기가 읽었다. 그 역시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언급하며 문학 강연보다는 실제적인 리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었다.
평소 학교 수업에서 소설 때문에 끙끙거리던 나로서는 리딩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가끔 수업 중 소설 단편 소설의 전문을 복사해주고 (저작권이 문제가 걸리지만 비상업적 목적이므로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읽게 하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아이들은 그 시간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는 좀 더 연구해서 리딩을 수업 시간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읽는데도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는다.
[인상깊은구절] 리딩은 아이오와 시티라는 도시에서는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벌어지는 행사다. 아마 리딩이 없는 날이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이 문학적 관습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렇게 해서 한국 작품의 맛을 - (중략)- 조금이나마 실제로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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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의 말>에서, 최승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가본 그곳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스트레스들과 싸우고 거기 적응해야 했던 생활 속에서는, 화장하고 정장 갖춰입고 모자 쓰고 하이힐 신은, 말하자면 품위있는 규격, 격식에 맞는 산문을 쓴다는 건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고, 아니 애초에 그런 품위와 규격에 다다를 수 있을 만큼의 완벽하게 완성된, 성장한 의식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여기 실린 글들은 맨얼굴에 부스스한 머리에 추리닝 차림-몸푼 여자 패션이라고 할만한-같은 글들이다. 쓰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편안-부러 상상하는 독자의 검열, 그런 것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했을 글들인데, 이것이 읽는 이에게는, 별로 가깝지는 않으나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닌 사람의, 집에서 뒹구는 패션을 처음 볼 때처럼 묘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기형도의 고백, (글쓰기로) 정신적 미화를 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이 일반적이라고 여기고 보자면, 글쓰는 인간들치고 정신적 화장을 하지 않는 일은 드문 일일텐데, 뭐 그런 점에서 이렇듯 완벽한 무화장의 글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역시 글쓰기에서마저도, 내추럴 메이크업을 제대로 해내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이... [인상깊은구절] 그런데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오히려 폴 오스터이다. 특히 잡지 기자들과의 인터뷰 기록문은 아직 한 편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작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논픽션 중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