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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르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유와 묘사
"메마르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유와 묘사" 내용보기
여성에 대하여 ㅡ말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하여ㅡ 여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는 여성의 전유물일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알든 모르든 여성을 말할 자격이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특히 내가 그러한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혔음을 이 책을 읽어가며 깨달았다. 나는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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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하여 ㅡ말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하여ㅡ

여성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는 여성의 전유물일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알든 모르든 여성을 말할 자격이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특히 내가 그러한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혔음을 이 책을 읽어가며 깨달았다.

나는 당연히 이 책의 저자, 드니 디드로가 여성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남성들은 이런 종류의 혐오감을 잘 모른다"는 구절에서부터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끊임없이 저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집착을 떨구어내지 못하고 책장을 넘긴 끝에, 독서를 끝내자자 저자를 검색해본 후 웬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초상화를 마주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난 패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여성들은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여성들에게 진실을 보여줄 때 그녀들의 무지조차 재빨리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일조한다. 어떤 권위도 그녀들을 예속시키지 않는다."

저자의 여성에 대한 이해는 이 구절로 이해될 수 있었다. 여성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가능성을 최대한 넓게 보는 것, 그는 여성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유보하려 했다. 그것은 18세기에 자연과학의 발달을 흡수하며 무신론과 유물론을 견지하며 어떠한 사상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려는 어느 지식인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는 여성들의 자기애와 개인적 이익을 긍정하고 있었다. 여성은 열정의 도취를 스스로 쟁취할 줄 알고 계획하고 가장할 줄 알며,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을 자신 안에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성에 대한 욕망을 인간의 본능의 한 부분으로 당연히 여길 줄 알았다.

그러면서도 여성에게 주어진 특유의 '정숙한 상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 노력이 보였다. 여성들의 도덕은 우리들이 그것에 중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특히 구별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여성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여성들은 마치 모자란 아이들처럼 취급받아왔다."라고 말하며 여성들은 부모의 통제로부터, 남편의 통제로부터, 임신과 자녀의 양육이라는 최후의 유일한 자산을 갖게될 뿐이었음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폭넓은 이해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한계는 벗어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복종한다"는 인식의 한계는 그것이 "자연의 일반적이고 영구적인 법칙"이라고 말함으로써 공고화되고 있었다. 어느 원시사회의 개방적인 성문화를 거의 파라다이스처럼 묘사했지만 그것은 규율과 격식이 없는 대신 또다른 위계와 억압을 간과한 것이었다.


'여성의 대하여'라는 글은 본래 장 토마의 '여성에 관한 소고'에 대한 서평 형식의 에세이였다. 드니 디드로는 장 토마가 여성에 관한 글을 쓴다고 하면서 '성'과 무관한 이야기로만 겉도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전방위적으로 여성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은 감히 그당시 어느 여성도 해내지 못한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가 여성의 본성을 묘사한답시고 그의 히스테릭한 면이나 나약한 신체적 한계 등을 여성 그 자체의 한계로 설정하였다는 점, 그리고 냉철하게 관찰한 역사적, 사회적 관습에 따른 여성의 역할론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여성 스스로의 지적 깨달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성의 재능, 통찰력을 인정하는 것 또한 계몽의 가능성으로 기능한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용기는 폄훼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여성에 대해 말할 자격이 누구에게라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타성에 젖은 여성보다도 더 예민하고 세심하게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시대적 배경 속에서 용기와 배려로 일구어낸 그의 저작에 존경심이 드는 이유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글은 "더 편파적으로 덜 이성적으로" 여성에 대해 묘사하였고, 그것은 마치 생동감있는 여성이라는 조각상으로 재탄생한 것과 같았다. 그 조각상이 살아있는 여성이 아니라 감상을 위한 객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면, 오히려 그 시대 여성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에 대한 감동조차 무시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메마르지 않고 여성의 생명력을 느껴볼 수 있는 글, 간만에 참 잘 읽었다.
b******a 2021.08.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