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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믿고 따르는 양식, 혹은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바로 법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가 그것이다. 누구나 정의로운 세상, 공정한 사회를 그리지만 항상 언론이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관련 기관이나 인물들에 대한 부정의 사례나 논란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기대감보다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런 것도 아니며 절대 다수의 공정한 사람들이 사회와 조직을 구성하며 법에 대한 해석이나 균형점을 잡으면서 해당 사건이나 사례에 대한 판결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 책도 이런 현실적인 부분과 취지를 담아서 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법이 말하는 가치나 균형점이 무엇인지, 또한 시민과 정의, 공정과 법치주의적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일단 일반적인 관점에서 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야 해당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책에서도 이 점에 주목하며 법의 균형을 찾는 과정으로 이익와 이해의 사이에서 바라본 시선, 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위기와 위험 사이에서 중심점을 잡는 요건과 체계 등이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법의 지배와 법을 통한 지배를 구분하며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부분, 점진적 변화와 전진적 자세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시민의 법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적 요인이나 외부적 요건 및 변수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전문성을 요구하는 용어로 인해 어렵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책은 최대한 일반적인 관점, 그리고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법을 해석하며 우리가 생활속에서 쉽게 접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들의 정리와 내용,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읽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나 법은 형식적인 존재로 유지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며, 자율적인 부분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람까지, 하나의 사례나 판결, 판례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의견과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법이 갖는 특징적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무조건 개혁을 추구하는 것도 그렇다고 변화를 주저하며 수구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합의와 타협의 가치를 통한 법치주의의 구현, 시민이 주도하는 법 질서의 확립과 안정 등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과제이자 방향성이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법의 균형> 이 무엇인지, 읽으면서 기본적인 구성과 요건에 대해 배우며 현실적으로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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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의견이 모두 틀렸다는 양비론은 언제나 여론 등에 편승하지 않고 관전하는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다는 중간입장처럼도 들리지만, 위처럼 보면 이것도 저것도 맞다는 양시론과도 비슷한 듯 다른 이론으로 보이기도 하다. 법은 기본적으로 쌍방의 의견을 모두 듣는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손은 반드시 들어준다. 그 결론을 내리기 위해 판사가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생각을 읽으며 한가지 결론만을 도출해 보는 건 어려울 것이다. 왜냐면 결론을 내려는 책이 아닌 과정을 보려주려 하는 책이기 때문이데, 그 과정 또한 물리적인 과정이라기 보다는 시각과 생각의 과정이라 볼 수 있기에 책을 읽으며 받는 느낌들을 제각각일 수 있겠다.
책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따끈따끈한 뉴스로서 LH공사와 관련된 부동산 투기와 연관된 이해충돌을 다루는 부분도 있고, 중국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를 다루는 부분은 다른 주제로써 몇개의 이야기 속에 연속 등장하기도 하고, 하물며, 아이만 먼저 내려버린 엄마를 정류장 이외의 장소에서 내려주지 않은 것을 비판했던 가짜뉴스도 한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사성 강하게 많은 뉴스를 법조인의 시각에서 분석하는 류의 책은 아니다. 저자의 시각에 법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부드럽게 읽힐 만한 수준의 법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중국미세먼지 이야기는 처음엔 중국의 자발적인 참여는 어렵고 국내의 문제도 필히 있다는 이야기가 소재로 잠깐 쓰였다면, 다음 중국미세먼지를 보는 시선에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론 피해를 보는 제3국의 입장으로썬 뾰족한 방법이 없고 스스로 이런 환경에서 못살겠단 자구적인 국내 목소리가 나올때 가능하단 평을 하면서 국제법의 작동원리를 살짝 설명하고도 있다. 어떤 것은 아예 법적이 구체적 사례가 아닌 송사의 상황과 비슷한 가벼운 터치 정도로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 있다.
워낙 다량의 활자가 실린 책이라 어느 한군데 클라이막스가 있는 구성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론 공익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보던 부분이 제일 책이 말하고자 하는 시선을 잘 보여줬다고 느꼈다. 다수의 이익이 꼭 공익이라곤 할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제대로 이해가 안됐었는, 다수의 이익이 현재냐 미래냐를 생각해 봤을 때 현재 다수의 이익이 미래의 다수가 될 이들의 공익까지 대변할 순 없다고 보기에 현재의 다수가 지니는 대변성을 짚어주고 있었다. 그냥 미래냐 현재냐로 구분짓는 단순논리보다 조금 디테일하게 들어간 면이 있겠지만, 결국 다수가 만들어내는 정답이 꼭 맞다고 할 수 없는 수많은 예들 중 하나라 생각됐다.
법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만한 내용들이라 어려워서 지례 손사래 칠 책은 아니라 본다. 다만, 실린 내용이 적지 않은 편이라 완전한 전체내용을 알아가기 위해선 빠르지 않은 흐름을 타고 음미하듯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해당 시리즈가 있는 책이니 읽는 독자마다 본인과 맞다면 한권으로 끝나진 않을 내용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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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가 난무하는 만큼 입법도 난무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코로나19라는 감염병 때문에 생긴 법은 지난 1여년 사이에 한 두 개가 아니다. 물론 생명에 관련된 사안이기에 급박한 것은 알지만 남발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다 보니 마스크 하나 쓰는데도 초기에는 여기저기에서 반발이 있었다. 법이라고 명시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뜻 보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는데 막상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보면 법학전문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세상에 완벽하고 완전한 법은 없다는 말이 십분 이해가 간다.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은 규제와 함께 그에 상응하는 법을 만들라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그와 비슷한 법이 없는 게 아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미비했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법을 자꾸만 새롭게 만들 생각만 하고 기존의 법은 지킬 생각도 안하는 상황이 더 문제인 것은 아닌가 싶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진실은 외면한 채 당장 눈앞의 상황에만 급급해 하니 정치적 포플리즘(대중영합주의)도 생기는 것이다. 사법 분야에서 사람들이 AI판사를 원하는 이유가 ‘공정성’ 때문이며 ‘전관예우’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여긴다는 대목이 그 위험성을 뒷받침 하고 있다. 저자는 이해와 충돌사이에서 중립적 합의를 이끄는 것이 법의 균형이라고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이익을 위한 법과 시민을 위한 법 사이의 균형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생존권과 다수의 생명의 안전 사이에서 정치권은 나름대로 치열했다. 사람들 아니 시민들이 법이 가진 무게와 중요성을 확실히 알고 인지해야 함은 자명하다. 규제도 좋은 규제를 위해 심사숙고해야지 막연하게 지금 처해있는 자신의 상황에 맞추거나 무조건적인 벌충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법도 숙성이 필요하다. 저자는 법을 ‘축적의 역사’에 빗대어 시대와 법 자체의 축적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로봇세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의 도래 앞에 법도 무수한 변화가 필요하고 이것도 법으로 만들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릴 법도 생기겠지만 법이 최소한의 보호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많은 법의 예시를 읽으며 시민들이 성숙해지면 법도 따라 성숙해지리라는 믿음을 보여준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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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범이라 배웠습니다. 법은 사회를 운영하는데 근간이 되는 최소의 질서이며 정의와 공정을 구현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의 모습과 역할은 오히려 이상(理想)에 가깝고 현실에서 시민들은 법은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소시민들에게는 멀고 불리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법은 이해 관계가 충돌되었을 때 이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균형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겠지요. 왜 법은 이상에 다가가지 못하고 현실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듯하여 “법의 균형 (최승필 著. 헤이북스)”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최승필 교수는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라고 합니다. 독일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대륙법의 원조인 독일에서 학위를 받다보니 다소 치우칠 수 있어 영미법과의 균형적 시각을 갖기 위해 미국 로스쿨에서도 연구하셨다는 것을 보면 법에 대한 학문적 성취에 대한 동기가 매우 강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저자는 법이 없는 상태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물론 법이 없어도 별 문제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물리적,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핍박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간단하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종식시키는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법은 필요한 것이고 없어서는 안되지만 신뢰를 잃어버린 법 또한 문제가 클 것입니다.
#법의균형, #헤이북스, #최승필, #책좋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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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법치주의", 즉 특정 개인의 자의에 의한 통치가 아닌 rule of law, "법에 의한 통치"를 헌법 원리 중 하나, 국가 운용의 핵심으로 꼽습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그래서 양팔 저울을 든 채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 <런어웨이 주리>를 보면, 어느 배심원이 "정의는 눈멀었지 않습니까?"라고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공정을 추구하기 위해 눈을 가린 것이, 어느새 기계적 맹목, 혹은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형식논리만 절대시하는 관료주의로 타락함을 비판한 대사입니다.
이 책 표지에는 "왜 사람마다 법을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가?"라는 질문이 적혀 있습니다. 법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자신의 기대를 투영하여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를 천차만별로 "주장"하는 건 그렇다쳐도, 법조경력이 오래된 법률 전문가들마저 의견이 갈리는 건 의아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거나 심지어 황당하기도 합니다. 다원주의 국가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건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법이 지나치게 "귀에 걸면..." 식이 되어서는 권위와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LH사태의 본질은 "이해상충(p66)"인데 말하자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으로, 다루는 업무의 성질, 혹은 내부 사정의 지득 가능성으로 인해 담당자가 관련 법률행위, 사실행위로부터 자진하여 손을 뗄 필요가 있을 때 거론됩니다. 민법상의 일반원칙 중에도 자기대리, 상호대리 등에 가해지는 제한이 있죠. 책에서는 특히 미국에서 강행법규, 처벌 위주로 이런 이해상충을 규율하는 연혁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른바 "강도귀족"과 의회의원 등의 결탁이 문제였는데 이때 큰 돈을 번 강도귀족(robber barron)으로는 밴더빌트, JP모건 등이 있죠. 앤드류 카네기도 이런 범주에 들 뻔했으나 대신 그는 광범위하고 파격적인 사회환원으로 훌륭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Nemo debet esse judex in propia causa."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의 라틴어 법언(法諺)이며, 이 책 p69에 나옵니다. 재미있는 건 "전관예우" 못지 않게 요즘은 "후관예우"도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로펌에 몸 담던 변호사가 판사로 임관될 시, 이후 자신의 구 직장이 담당한 사건에서 그에 우호적으로 재판하기 쉽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여튼 책에서는 p72 등에서 "한번 신뢰를 상실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이를 실행할 채널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 이슈는 책 저 뒤 p250 이하에서 다시 자세히 논의됩니다.
논란이 일 만한 기소, 구형, 판결이 이뤄질 때마다 포털의 댓글란에 잘 달리곤 하는 말이 있습니다. "AI 판사를 도입해야 한다." 책에서는 그러나 AI 역시 알고리즘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인풋 데이터 자체가 오염되었을 수 있습니다(p89). 법률 전문가들이 즐겨 하는 말 중에 "규범적 판단"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리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내어 놓은 소견이라 해도 이를 필터링 없이 기계적으로 판결 안에 수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재치있게, 저런 알고리즘 만능주의를 가리켜 "알고리-이즘(ism)"으로 비판합니다. 원래 알고리즘은 철자를 algorithm이라 쓰죠. 이 역시 사람이 설계할 뿐인데 그에 대한 맹신이나 신격화가 이뤄져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나아가 편향된 알고리즘이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독재를 저지른다면 이를 알고크라시(p91)라 부를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퍼스널 모빌리티의 중요성이 날이 갈수록 커짐에 따라 킥보드를 강남 한복판에서도 용인하게 되었죠. 배달 문화의 확산에 따라 사방에서 바이크가 출몰하는 판에 여기가 동남아냐는 탄식과 우려도 나옵니다. 이를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 혹은 반대로 어떻게 적절히 장려하여 개인의 편의를 배려하고 생산활동을 촉진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p100)도 본래 취지는 좋았던 것이라서 1990년대 빌 클린턴 시대에 "탈규제" 열풍 와중에 그 단초가 마련된 것입니다. 규제를 없애다 보니 이런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 그렇다고 마냥 규제 일변도로 복귀하자면 그 폐해는 충분히 짐작가능하니 참으로 큰 딜레마입니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처음에 가상화폐에 대해 마냥 무시, 혹은 범죄시하는 태도로 나가다가, 최근 참여자가 너무 늘어 이제 외면할 수 없는 대세로 바뀌자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이라면 정부는 적절한 보호, 혹은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책에서는 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입법"을 통해 대응하되, 그 정신과 취지에는 "혁신 비전"이 담겨야 한다는 취지로 말합니다(p111. 워딩은 이 서평 중 다소 변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첨단 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가상화폐, 블록체인 등의 토픽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해 다루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최근 고유 가상화폐 "리브라"를 "디엠"으로 개편했는데 계정 소유자에게 바로 보내는 다이렉트 메시지의 약자가 아니고, 라틴어 diem이라고 합니다. 사실 주격은 dies인데 왜 페이스북에서 목적격 형태를 이름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상화폐가 결국 제자리를 못잡는 이유로 1) 가치의 변동폭이 너무 크다 2) 중앙 정부 등 권위 있는 기관의 보증이 없다 등을 꼽는데 이는 이미 낡았거나 논파된 사항들입니다. 책에서도 이런 주장은 하지 않는 대신 가상화폐의 다른 기술적 난점을 분석하는 식으로 주장을 전개합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이미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가상 화폐 실험이 있었는데 이게 실패로 끝났다고 합니다(p138).
반면 중국에서는 개인 간 단말의 접촉만으로도 바로 이체가 가능해지는 등 다른 나라가 성공 못 한 여러 단계를 극복했다고 하는데 더 지켜볼 일입니다. 애초에 돈은 익명성을 추구하는 게 그 본성에 가까운데 중앙은행이 이를 훤히 들여다보는 식으로 관리한다면 과연 운용이 잘 될지 의문이죠. 민간 가상화폐(코인)가 이처럼 사람들 사이에 큰 매력을 갖는 이유는 은밀한 사용, 탈세 등 여러 솔깃한 유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처럼 원하는데, 독재도 아닌 민주국가에서 과연 "쓰지 마라!"는 호통과 규제 일변도로 대응이 가능하겠습니까. 가치변동이 심하다? 애초에 법정화폐 역시 인플레라는 숙명적 적수가 있기 때문에 가치 변동을 피할 수 없고 부동산, 미술품, 금, 주식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치 변동이 심한 게 문제라면 주식 투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술과 법 사이의 대화가 가장 필요한 영역(p139)." 암호화폐에 대한 저자의 멋진 요약입니다.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의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입니다. 원래 주장의 참 거짓은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증명을 해야 합니다. 이게 법치주의 사회, 혹은 소송법상의 대원칙이죠. 안 그러면 무책임한 개인의 선동 때문에 사회 전체가 비용을 치르거나 혼란에 빠집니다. 어찌보면 빌프레도 파레토 식의 차가운 공리주의인데, 문제는 이 원칙을 무한정 적용하면 의료사고, 환경오염 등의 피해에 힘 없는 다중 피해자가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가 예상되면 무조건 입법으로 대응을 해야 하나. 여기서 경제학자 스티글리츠의 명언이 인용(p171)되는데 "비행기 시각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면, 당신은 공항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이다."는 말이죠. 저 역시 그런 편인데 출발시각에 늦는 게 너무도 악몽 같은 일이라 그 걱정 때문에 보통 한 시간 정도는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그게 그렇게 지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알고보면 공연한 시간의 낭비입니다. 입법이란, 혹은 법적 규제란 엄청난 사회적 비용 지출을 수반하는 게 보통이죠.
감염병 역시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새로운 중요성을 갖고 주목됩니다. 원래 감염병은 인구 밀집 지역에서 급속히 확산되는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인더스 유역 등에서 초기 문명이 형성된 건 이들 지역이 감염병 확산에 상당히 불리한 기후 조건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p209)고 합니다.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CCTV의 확충, QR코드를 통한 동선 파악 등 개인정보, 사생활의 침해가 어느 정도는 용인되어야 하는데 두 가치의 형량조절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입니다.
법학의 본고장인 독일 답게 미세먼지 피해를 갖고도 국가에 소송을 거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미세먼지로 건강 피해를 주장하는 소송도 있고, 당국에서 교통 통제를 하자 이에 대해 반대하는 주민이 소송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문제의 심각성에 "비례한(p231)"조치이냐 그렇지 않냐는 겁니다.
"양질전화"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히 양에 불과한 것도 일정 양(量) 이 축적되고 어느 정도를 넘기면 질(質)적인 발전이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유물론 쪽에서 즐겨 사용하는 경향도 있는데 저자는 "적어도 법 쪽에서는 양질전화의 원칙이 그리 잘 통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합니다(p258). 법학에서 그리도 강조하는 "규범적"이란 말은, "결코 양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질의 우위"라는 사고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p275에는 재미있는 농담이 나오는데 "대법관님, 정의를 실현하세요!"에서 대법관도 justice고 정의도 justice인 데에 펀치라인이 있습니다(일반 법관은 그냥 judge이죠). 모든 기관이 어떤 독재적 권위에 굴하여 수직적으로만 기능한다면 이는 거버넌스의 붕괴나 같습니다. 반대로 모든 기관이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각개행진만 한다면 이는 질서의 파탄입니다. 한국의 경우 오랜 식민통치와 군부독재의 악몽 때문에 막연히 공권력에 대한 거부감과 피해의식을 갖는 수가 있는데 국가 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당연히 요구되는 사항이지만 그 선을 넘는 건 모두가 좋자고 만든 국가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책 p334에서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의 예를 들며 과연 범죄자와 정의의 실현 사이를 칼로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을지를 두고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에 초호화 캐스팅으로 한 번 영상화되었고 2017년의 작품(셰익스피어 극 전문 배우 케네스 브래너, 또 조니 뎁 주연의)은 두번째 시도죠. 여튼 죽은 사람(피해자)는 극악무도한 인간이고 가해자는.... 사연을 알고 보면 누구나 이해할 만한 사람(스포일러)둘에 의한 중첩적 인과관계가 작용한(독일 형사법학의 핵심 토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이 있습니다. 애초에 아무런 오류 없이 만인에게 공평무사히 적용, 해석되는 법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파괴하자!" 같은 무책임한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되고, 불완전한 것이라도 중지를 모아 고쳐 쓰고 타협하며 대화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 또 그래야 할 의무가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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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본질적으로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법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법이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왜 우리는 같은 법을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일까? 시민들의 합의에 의해 형성된 법이 어떻게 균형을 맞춰가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은 1부: 법 균형을 찾다와 2부: 법 시민을 향하다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나의 공정, 타인의 공정 파트가 인상적이었는데 우리 모두 공정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는 것에 공통된 합의를 보인다. 공정한 사회의 시작은 기회균등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살고 속해 있는 사회가 공정한가를 떠올려봤을 때, 공정하다는 생각을 선뜻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타인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지만, 개개인마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사회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공정한가?에 대한 질문에는 대체로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개개인이 공정하게 행동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공정한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대목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는 도덕의 최소한으로서의 법을 지키는 상태에서 이익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공정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상태가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그 방향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개개인마다 공정의 기준이 다르다고 했는데, 개개인의 시민으로서 해야할 것은 자신이 지닌 공정의 기준이 정말 공정한 기준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면서 끊임없이 수정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즉 자신도 불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2부에서는 여론의 법정 파트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최근에는 유투브 등 여러 플랫폼의 발달로 여론의 법정 현상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론과 법정은 엄연히 다른 세계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론은 법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잊혀질 수도 있었던 사건을 공론화시켜 조명받게 하는 등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으나, 부정적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표적인 사건은 O.J.심슨 사건이다.
여론은 유동적이다. 여론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은 대표적으로 언론으로, 언론이 중립성을 잃는 순간 여론은 그저 편향적인 분노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그렇기에 항상 이러한 위험한 여론이 법정을 좌지우지 하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순간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규범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이 정의가 훗날에는 정의롭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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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빅데이터를 기준으로 스스로의 정의의 기준을 찾아 나서기도할 것이며, 사람의 편견이 개입되지않는 새로운 심판기능을 추구할 수도 있다. 바로 AI(인공지능)다. (86~87쪽)" 나는 최승필님께서 저술하시고 <헤이북스>에서 출간하신 이책? <법의 균형>을 읽다가 윗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 검찰과 사법부는 불신을 받고있다. 우선 윤석열같은 정치검사부터가 문제다. 윤석열은 장모사기사건에 연루되어 자신도 구속위기에 빠지자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발악한 것이다. 즉, 구속되서 교도소가야할 자가 윤석열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부인 법원은 또 어떤가? 근데, 법원도 정말 국민들 법상식에 어긋나는 엉터리판결들을 내리고있다. 세상에나 대구 신천지의 방역방치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졌고 이는 1차 대유행을 가져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수괴인 이만희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한, 광화문집회를 불허하여 원천봉쇄해야했는데 박형순반사는 조건부 허가 판결을 내려 그당시 동화면세점앞으로 떼거지로 대규모로 몰렸고 이에 비말들이 튀어 확진자들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근데, 광화문집회를 강행해 2차 대유행을 가져온 전광훈도 어이없게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엉터리판결들로 진작에 코로나19가 소멸됐어야할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도 그고통이 이어지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럴거면 AI가 판결하는게 낫다는 국민들의 호소가?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오고 판사, 변호사 등의 직업이 미래엔 AI로 대체되기에 없어질 직업이라는 것도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아무튼 맨윗구절을 읽으니 정말 사법부에 AI판사도입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글고 이책의 저자이신 최승필님께서는?독일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율리우스 -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대졸업하신 분이시지만 경제에 관심 많으시고 좋아하셨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10여년동안 기업분석, 외채와 국제수지 등의 일을 하다가 학교로 자리를 옮기셔서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을 가르치고있다. 또한,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정책수립, 법령해석, 감찰, 심판, 제재 등의 일을 하고있다. 그리하여 이책에서는?이익과 이해사이에서, 혁신과 규제사이에서, 위기와 위험사이에서, 법의 지배 법을 통한 지배, 느린 전진, 시민의 법 등 총 6장 396쪽에 걸쳐 이해의 충돌을 조율하는 균형적 합의로서 법의 역할에 대해 각종 예화들도 곁들여 알기쉽게 잘설명해주시고있다. 나는 또한, 저자께서 가짜뉴스의 폐해에 대해 지적해주신 글에도 200% 공감이 갔다. 지금 우리사회에도 태극기부대 세력들에 의한 가짜뉴스의 폐해가 무척이나 심각하다. 근데, 조선중앙동아 등 조중동, 매경, 한경, 머니투데이 등 경제지들도 여론조작은 물론 심지어는 가짜뉴스들도 아니면말고식으로 퍼뜨리고 있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정말 가짜뉴스 퍼뜨리는 자들은 물론 기관들에 대한 법적 처벌도 강화되어 속히 근절되야할 것이다. 어쨌든 정치, 경제, 사회분야에서 한국사회의 법적 균형과 올바른 법적용에 대해 잘설명해주신 이책 아주 잘읽었으며 나에겐 참으로 뜻깊은 독서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균형있게 법이 적용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고 지향하시는 분들께서는 놓치지않고 꼭읽어보시길 권유드리고싶다. 지금도 생각나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대응을 잘하고있지만, 법개정을 통해 보완할 것이 있다면서 들려주셨던 다음의 말씀이... "우리는 큰위기가 지난후에도 잊지말고 반성으로 기록을 남기고 법을 바꾸고 현장에서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다음 감염병과의 싸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203쪽) " #법의균형 #최승필 #헤이북스 #법 #이익의충돌 #이해의충돌 #균형적합의 #충돌의조율 #법학 #문화충전 #윤석열 #이만희 #신천지 #전광훈 #광화문집회 #코로나19 #한국은행 #가짜뉴스 #태극기부대 #박형순판사 #머니투데이 #매경 #조선 #중앙 #동아 #조중동 #매경 #법학전문대학원 #한국외국어대학교 #대구 #동화면세점 (문화충전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후기 정성껏 써올립니다. 근데, 중학교시절에 도서부장도 2년간 하고 고교 도서반 동아리활동도 하는 등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엄청 좋아하는 독서매니아로서 이책도 느낀그대로 솔직하게 써올려드렸음을 알려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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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해 생각하자니 불현듯 고 노회찬 전 의원이 떠오른다.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이 만 명에게만 평등하다는 날카로운 풍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법 현실에 대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법을 단순히 사회의 질서 유지와 안녕을 위한 장치 정도로 정의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법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살아숨쉬는 생물과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신간 『법의 균형』은 요즘 법의 경향 혹은 관심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고 먹을거리나 가질 것들이 많아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 위해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을 벌이기도 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볼 수 있다. 다양한 법들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미 입안 과정에서 이해집단의 요구에 따라 난도질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필요하고 시급히 시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의 필요 상황에 따라 경중의 가치가 바뀌니 정말 한탄할 노릇이다.
법의 본래 기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법 제정과 집행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경우 특정 그룹이나 유력한 개인의 사적 이익, 정치적 목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좋은 법이 만들어져 있는데도 활용하지 못하고 이슈에 따라 비슷한 내용의 법을 다시 만들겠다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거기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을 잘 조정하기 위한 법의 기능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사회가 단순한 이익 갈등을 넘어 세대 간 대립, 성별 간 대립, 지역 간 대립 등 각종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법의 기능이라 한다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 문제가 이념적 문제로, 그리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맹목적인 대결 구도로 변질되는 한국 사회는 곧 터질 폭탄을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법은 과거로부터 축적된 인류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배려해야 하는 성질의 것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는 금융경제의 무책임한 가치 확장과 자원의 고갈과 환경 위기라는 실존적 문제까지 겪고 있는 지구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문에 시민 사회의 역할, 시민 개개인의 각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좀 더 법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기득권이 공공의 가치를 사유화하는 악행을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거나 모르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익은 취하면서 책임의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불법적인 집단이나 개인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바른 방향성을 설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정말 개혁되어야 할 갑이 철옹성 같은 법의 보호를 받고 이익을 취하고 있는데, 그 아래서 얼마 되지도 않는 파이를 가지고 수많은 을들이 제살 깎아먹기에 빠져 있는 것은 비극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교육에서 찾는다.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서 적용되는 법 내용들, 예를 들어 계약 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 등을 가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 활동에 넣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윤리와 이익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된 상태로 법 환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정, 균형, 정의, 합리성 등의 가치가 필요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상생의 핵심은 이익의 균형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법이 어떤 고상한 대의를 폼고 있다거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라거나, 똑똑한 사람들만 다루는 것이라거나 하는 환상을 버리자.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법 지식부터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아이들부터 제대로 교육시키자. 그리고 무엇보다 법이 특정 이익 집단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 취득 수단이 되지 않도록 모두의 법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법의균형, #최승필, #헤이북스, #이익의충돌, #이해의충돌, #균형적합의, #법학, #문화충전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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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4년을 지났고, 오늘부터 마지막 1년이 임기다. 적폐청산, 평등과 공정, 정의를 외치며 들어선 정부가 이젠 임기 1년만 남겨 놓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미 레임덕이 왔든지, 아니면 레임덕이 시작될 즈음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의석수가 압도적이어서인지 그 같은 우려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적폐청산의 하나인 검찰개혁이 아직 말끔히 이루어지 않은 느낌이라서 찜찜하다. 공수처도 출범했지만 야당의 공세에 많이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차후 존립 여부도 의문시 된다. 물론 법에 의해 출범한 공수처이니만큼 법에 의해 존폐도 결정될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고 했던 명연설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종료된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독자는 법에 관한 서평 서두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임기, 검찰개혁을 왜 거론하는가. 법 때문이다. 독자는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법에 저촉된 행위를 한 적도 없어 법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선 검찰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엄청난 갈등과 대립 등을 보면서 "법이 사회의 질서 유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긴 하나 보다" 하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법은 권력의 시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담긴 말이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고, 지금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친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권력의 시녀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는 데 법처럼 확실한 것도 없을 것이고, 법관이나 검찰처럼 존경받는 기관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법조계는 국민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번 검찰개혁 갈등으로 드러난 법조계의 각종 치부는 법조인을 떠나 일반인들도 낯부끄러워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재판 거래'는 무엇이며 '공수처' '검찰개혁'이라는 단어는 국민들의 법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낯추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검찰개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의한 법조인이 아니라 자기 조직의 이익에 의한 법조인, 즉 사라져야 할 법조인 아닌가 독자는 생각한다. 독자의 기억으로는 법 얘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해가 별로 없다. 최근 1~2년은 '대한민국이 법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자조 섞인 국민의 원망이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세기, 1960~1990년 대는 법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으로 어떤 사실이 말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의(恣意)라는 말은 자(恣)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의적이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이르는데, 이현령비현령은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 법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타인에게는 불리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고 법 집행의 법정주의를 정면으로배치되는 행위이다. 이 책 『법의 균형』이 쓰여져야 했는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원이나 검찰 내에는 이른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고 한다.(독자는 검찰청이나 법원 청사에 직접 들어가본 적이 없어 확인은 못했지만) 이 여신상은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정의뿐 아니라 진리와 질서를 함께 상징하여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로서, 오늘날의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이다. 정의의 디케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오늘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Justitia에서 생겨났다.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여기서 저울은 개인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선악을 판별하여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 무사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사전을 찾아 옮겨 적었음, 독자주)
이 책은 법이 말하는 가치나 균형점이 무엇인지, 또한 시민과 정의, 공정과 법치주의적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일단 일반적인 관점에서 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야 해당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책에서도 이 점에 주목하며 법의 균형을 찾는 과정으로 이익와 이해의 사이에서 바라본 시선(1장), 혁신과 규제 사이(2장)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위기와 위험 사이(3장)에서 중심점을 잡는 요건과 체계 등이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법의 지배와 법을 통한 지배(4장)를 구분하며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부분, 점진적 변화와 전진적 자세(5장)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시민의 법(6장)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적 요인이나 외부적 요건 및 변수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전문성을 요구하는 용어로 인해 어렵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책은 최대한 일반적인 관점, 그리고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법을 해석하며 우리가 생활속에서 쉽게 접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들의 정리와 내용,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구분했다.
법은 공평성을 근거로 균형론을 제시하는 제도권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있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또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할 때는 법의 성격을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모르니까 무조건 변호사를 찾아가 호소하는 것이다. 또 법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면 자신에게 유익한 판결이 나오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법의 균형론'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최승필은 법이 ‘불완전한 정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익과 이해를 둘러싼 각자의 주장과 논쟁이 갈등의 순환을 그릴 수밖에 없기에 불합리하고 불편하더라도 먼저 중간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 7) 여기서 법은 ‘균형적 합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의에 점차 수렴된다는 것이 저자의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중견 법학자인 저자는 ‘균형적 합의’를 위해서는 ‘진실과 왜곡되지 않은 시민의 의지’가 필요하며, 좋은 법은 곧 ‘시민의 법’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 최승필
독일 바이에른Bayern 주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율리우스-막시밀리안 대학교Julius-Maximilians Universitat Wu_rzburg에서 2년간 경제학을 수학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공법으로 법학 박사Dr. iur. / Magna cum Laude 학위를 받았다. 법대를 나왔지만 경제를 좋아했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한 일 없이 풍족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행에서 십여 년 동안 기업 분석, 외채와 국제수지 등 일을 하다가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다. 공법, 비교공법, 헌법, 토지공법, 은행법, 경제법, 환경법, 재정법, 지방자치법, 국제경제법 등의 학회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그중 몇몇 학회에서는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아울러 국회에서 입법 지원 업무를 하고 있으며, 정부와 국책연구소들에게 자문을 해주고 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심판 업무도 하고 있다. 법원 및 검찰의 학술 활동에도 참여하여 실무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좋은 공직자와 변호사 그리고 전문인을 선발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고 있으며, 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일도 하고 있다. 대륙법과 영미법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갖추기 위해 미국 UC버클리 대학교 로스쿨UC Berkeley Law School에서 분주한 연구의 시간을 보냈다. 편견을 없애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기였다. 중국인민대학교 법학연구원의 객원 펠로우로 한중 공동 관심사에 대해 함께 연구했다. 지은 책으로 『법의 지도』, 『법의 균형』, 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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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4년을 지났고, 오늘부터 마지막 1년이 임기다. 적폐청산, 평등과 공정, 정의를 외치며 들어선 정부가 이젠 임기 1년만 남겨 놓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이미 레임덕이 왔든지, 아니면 레임덕이 시작될 즈음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의석수가 압도적이어서인지 그 같은 우려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적폐청산의 하나인 검찰개혁이 아직 말끔히 이루어지 않은 느낌이라서 찜찜하다. 공수처도 출범했지만 야당의 공세에 많이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차후 존립 여부도 의문시 된다. 물론 법에 의해 출범한 공수처이니만큼 법에 의해 존폐도 결정될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고 했던 명연설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종료된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독자는 법에 관한 서평 서두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임기, 검찰개혁을 왜 거론하는가. 법 때문이다. 독자는 법과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법에 저촉된 행위를 한 적도 없어 법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 들어선 검찰개혁 과정에서 드러난 엄청난 갈등과 대립 등을 보면서 "법이 사회의 질서 유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긴 하나 보다" 하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법은 권력의 시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하수인 역할을 해온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담긴 말이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고, 지금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친다. 법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권력의 시녀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는 데 법처럼 확실한 것도 없을 것이고, 법관이나 검찰처럼 존경받는 기관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법조계는 국민에게 어떻게 보일까. 이번 검찰개혁 갈등으로 드러난 법조계의 각종 치부는 법조인을 떠나 일반인들도 낯부끄러워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재판 거래'는 무엇이며 '공수처' '검찰개혁'이라는 단어는 국민들의 법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낯추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검찰개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의한 법조인이 아니라 자기 조직의 이익에 의한 법조인, 즉 사라져야 할 법조인 아닌가 독자는 생각한다. 독자의 기억으로는 법 얘기를 이렇게 많이 들어본 해가 별로 없다. 최근 1~2년은 '대한민국이 법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자조 섞인 국민의 원망이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세기, 1960~1990년 대는 법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으로 어떤 사실이 말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자의(恣意)라는 말은 자(恣)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자의적이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이르는데, 이현령비현령은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우리 법이 그런 대우를 받았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타인에게는 불리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고 법 집행의 법정주의를 정면으로배치되는 행위이다. 이 책 『법의 균형』이 쓰여져야 했는가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법원이나 검찰 내에는 이른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고 한다.(독자는 검찰청이나 법원 청사에 직접 들어가본 적이 없어 확인은 못했지만) 이 여신상은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정의뿐 아니라 진리와 질서를 함께 상징하여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로서, 오늘날의 정의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여신이다. 정의의 디케에 형평성의 개념이 추가되면서 오늘날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치아(Justitia)가 탄생하였다. 오늘날 정의를 의미하는 Justice는 Justitia에서 생겨났다.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한 손에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여기서 저울은 개인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선악을 판별하여 벌을 주는 정의의 여신상은 대개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 이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 무사한 자세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사전을 찾아 옮겨 적었음, 독자주)
이 책은 법이 말하는 가치나 균형점이 무엇인지, 또한 시민과 정의, 공정과 법치주의적 의미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일단 일반적인 관점에서 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가져야 해당 사안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책에서도 이 점에 주목하며 법의 균형을 찾는 과정으로 이익와 이해의 사이에서 바라본 시선(1장), 혁신과 규제 사이(2장)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며, 위기와 위험 사이(3장)에서 중심점을 잡는 요건과 체계 등이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법의 지배와 법을 통한 지배(4장)를 구분하며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적인 부분, 점진적 변화와 전진적 자세(5장)를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시민의 법(6장)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적 요인이나 외부적 요건 및 변수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물론 전문성을 요구하는 용어로 인해 어렵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책은 최대한 일반적인 관점, 그리고 대중적인 눈높이에서 법을 해석하며 우리가 생활속에서 쉽게 접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용어들의 정리와 내용,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구분했다.
법은 공평성을 근거로 균형론을 제시하는 제도권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있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또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할 때는 법의 성격을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모르니까 무조건 변호사를 찾아가 호소하는 것이다. 또 법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면 자신에게 유익한 판결이 나오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잘 알아두어야 한다. '법의 균형론'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최승필은 법이 ‘불완전한 정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익과 이해를 둘러싼 각자의 주장과 논쟁이 갈등의 순환을 그릴 수밖에 없기에 불합리하고 불편하더라도 먼저 중간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p. 7) 여기서 법은 ‘균형적 합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정의에 점차 수렴된다는 것이 저자의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중견 법학자인 저자는 ‘균형적 합의’를 위해서는 ‘진실과 왜곡되지 않은 시민의 의지’가 필요하며, 좋은 법은 곧 ‘시민의 법’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 최승필
독일 바이에른Bayern 주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율리우스-막시밀리안 대학교Julius-Maximilians Universitat Wu_rzburg에서 2년간 경제학을 수학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공법으로 법학 박사Dr. iur. / Magna cum Laude 학위를 받았다. 법대를 나왔지만 경제를 좋아했다. 모든 사람들이 억울한 일 없이 풍족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은행에서 십여 년 동안 기업 분석, 외채와 국제수지 등 일을 하다가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을 가르치고 있다. 공법, 비교공법, 헌법, 토지공법, 은행법, 경제법, 환경법, 재정법, 지방자치법, 국제경제법 등의 학회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그중 몇몇 학회에서는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아울러 국회에서 입법 지원 업무를 하고 있으며, 정부와 국책연구소들에게 자문을 해주고 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심판 업무도 하고 있다. 법원 및 검찰의 학술 활동에도 참여하여 실무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좋은 공직자와 변호사 그리고 전문인을 선발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고 있으며, 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일도 하고 있다. 대륙법과 영미법에 대한 균형적 시각을 갖추기 위해 미국 UC버클리 대학교 로스쿨UC Berkeley Law School에서 분주한 연구의 시간을 보냈다. 편견을 없애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기였다. 중국인민대학교 법학연구원의 객원 펠로우로 한중 공동 관심사에 대해 함께 연구했다. 지은 책으로 『법의 지도』, 『법의 균형』, 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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