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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은 고전 사회학에서부터 내려오던 전제를 비판하는 것에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통합된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고 주장한 벨은 경제, 정치, 문화의 세 영역으로 나누어 사회를 살펴본다. 그는 기성의 사회학과 달리 각 영역들은 상이한 원리로써 움직이며, 이러한 원리 간의 충돌이 사회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 그의 주장은, 그러나 현대사회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기념비적인 작업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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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벨의 글은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을 만들었다는 다이달로스의 솜씨에 버금간다. 감탄했다.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이용해서 이런 글을 쓰다니. 한 가지 더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걸 번역한 역자의 노력이야말로 지대하다. 덧붙여서 해설까지. 여러모로 더할 나위 없이 정성을 쏟아 만든 이론임에는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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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자본주의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온 세계가 양분된 냉전이라는 체제가 종식된 것은 오랜 대립을 지탱하던 두 기둥 중 하나인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나라들이 개혁과 개방을 외치며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원리를 수용한 것은 자본주의가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그만큼 압도적인 이데올로기라는 반증이다.
자본주의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는지를 처음 분석한 이는 사회학의 거두 막스 베버다. 1905년에 발간된 그의 기념비적인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건 근대 종교개혁의 결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가톨릭(구교)의 종교관에서 경제적인 부유함은 종교적인 독실함과도, 윤리적인 성실함과도 대비되는 것이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는 마태복음의 구절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치 판단의 척도였다. 하지만 그간 오랫동안 축적된 가톨릭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성경 본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기독교의 분파(신교)를 만들어낸 츠빙글리, 루터,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특히 칼뱅의 예정론에 따르면 정당하게 축적한 재산은 신의 뜻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사상은 그동안 종교란 그늘에 가려졌던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줬다. 하지만 그는 무비판적인 재산 축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빈함을 강조했다.
칼뱅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프로테스탄트(청교도)라 불리며 유럽을 떠나 아메리카로 향해 오늘날의 미국을 개척했다. 유럽에 남은 이들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는데, 바로 부르주아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은 청렴함을 중시한 칼뱅이 살던 시기와는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생각 속에 있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간이 생산하는 물품들의 총량과 종류는 폭증했는데, 이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금욕과 절제가 아니라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20세기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 안에 숨겨진 모순성을 포착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금욕과 절제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이념은 탐욕과 무절제 없이는 더이상 구조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벨은 기술-경제적 질서, 정체, 문화라는 세 가지 영역 모델을 두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는데, 또다른 대표작인 <탈산업사회의 도래>는 기술-경제적 질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에서는 다른 중심축인 문화를 깊이 다룬다.
벨에 따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사회 그 자체는 통합성을 결여하고 있다. 즉 사회란 서로 다른 것들의 총합에 불과한데 사회 속 개별자들을 공통으로 이어주는 것은 다름아닌 종교다. 물리적 제약과 실존적 질문 사이에 존재한 자연과 인간의 자연 탐구 능력을 확장시켜주는 도구에 불과한 역사는 어떤 사회 속에 존재한는 인간들을 이끌어줄 지침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종교는 인간을 넘어선 존재와 인간을 매개해주는 초월성을 띠고 있기에 자연이나 역사보다 제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본책에서 할애한 1960년 미국의 상황은 2차 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진 미국의 참전과 유럽에서 일어난 68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전복되는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전통적 규범이 무너지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상황에서 당대인들이 마주한 가치 혼란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하면서도 반대로 미국에서만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올해 다시 출간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고전과 학술 명저 번역이 아직 미흡한 한국 출판계에 분명 가뭄의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특유의 통찰성있는 이론에도 벨은 생전에 여러 학자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받은 비판에 대한 반박을 개정판에 덧붙이고 난해한 자신의 이론을 요약해 논지를 정립했다. 적지 않은 본문의 분량에 더불어 초판과 개정판의 서론, 생전 최신 판본의 후기, 벨이 직접 쓴 서론, 그리고 번역자 박형신 교수의 꼼꼼한 해제는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 한길사 대학생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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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제에서는 사회주의자고 정치에서는 자유주의자며 문화에서는 보수주의자이다." 다니엘 벨은 자신을 소개하는 그의 말처럼 경제, 정치, 문화를 넘나드는 배경지식으로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을 하였으며 20세기 중 가장 중요한 사회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직장인의 입장에서, 혹은 나이와 소속을 불문하고, 꼭 사회와 정치학을 깊게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회에 속해있는 우리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생각 및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 그중 '보수적', '진보적', '자유주의적' 과같은 용어들은 우리의 가치관을 하나로 표명해주는 틀로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한 단어들이 그 사람의 모든 특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테다. 따라서 사회 안에서 여러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우리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 그것을 '모순적'이라 칭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자본주의의 이중적 속성- 금욕과 욕망-을 비롯한 노동의 분업 (관료제적 속성)과 자아실현, 그리고 사회와 문화의 충돌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책의 전반적인 바탕은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적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대량생산, 그리고 소비사회를 거쳐 쾌락 밖에 남지 않은 현대 자본주의의 이중적 모순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경제와 분배적인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예술과 종교와 같은 우리의 '문화'와도 깊숙히 연관되어있고 벨은 이것을 탐구한다. 1930년대부터 현대의 1990년대까지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속성을 살펴보고 2장과 3장에서는 40~60년대의 문화 구조와 예술의 담론을 살피며 6장에서는 공공가계의 개념으로 마무리한다. 이미 누군가는 벨을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벨이 지금까지 집필해 온 여섯 개의 사회학적 고찰을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세 가지 요인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하여 '모순적'인 세상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방대한 양에 머리를 싸매더라도 그의 박식한 글에서 나오는 논리와 예시들은 책을 지치지 않고 읽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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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제대로 인지할 여유조차 없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의 물리적 충동 욕구와 함께 상응하는 문화적 모순에 관하여, 다니엘 벨은 보다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예리한 관찰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문화적 기술적 요소를 이루는 주요 특성은 무엇인지, 현재의 자본주의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고 녹아든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자본주의와 문화적 요소가 결탁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요소는 이 두가지의 원형은 사회이고 사회는 매순간 변화와 새로운 혁신을 시도한다는 데 이들은 커다란 공통 연대적 유대감을 얻는다. 현재 경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몇 차례의 세대를 거쳐 의식의 변화와 자아의 확대를 거쳐왔다. 산업사회 이전의 시대는 종교의 시대였다. 종교의 시대는 즉 금욕주의의 시대다. 사회의 절대적인 가치가 물리적 재화나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의 가치는 문화적 충동을 억제하는 데, 고정되고 단단한 동결된 관계 속에서 수반되는 안정성에 기반했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주의적 모순과 같이 당시의 파동은 종교주의가 결국 정당성을 얻지 못한 것이다. 무조건적인 절제와 인간 근본의 욕망을 도사리는 사회의 분위기는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점차 굳어져가는 문화의 동향 또한 역동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사회의 이해관계와 절대적인 사상 속에 피어오른 것은 다름 아닌, 새로움에 대한 욕망과 동경이었다. 극단적인 청교도주의에서 깨어나 사회는 쾌락주의에 눈을 뜨고, 개인의 욕망과 충동에 충실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사회가 변화하는 것과 같이 문화도 예술도 당연한 이치와 같이, 욕망에 충실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다니엘 벨이 다루고자 하는 것은 '자유'와 '해방'을 억압하는 전자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과 비판으로 결과된 현재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각 시대의 문화와 관념들을 존중하되, 우리가 가져가야 할 문화적 태도와 지향해야 할 건설적 행동양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머지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자본주의와 문화의 공통적인 욕망의 추구와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는 연대 속에서 일컬어진 새로운 모순. 이것이 자유인가, 방치인가 하는 현재의 문화적 양상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문화와 예술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동향이 펼쳐질 것인가 하는 다니엘 벨의 우려이자 조언을 들을 자본주의의 이중적 모습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무엇이 다시 전체 사회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문화와 상호관계를 주고 받는 자본주의 영역의 측면에서 상호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한 문화적, 예술적 장치들이 과연 문화와 예술의 토대를 존중하는 책임에서 비롯된 과정일지. 또 예술과 문화의 측면에서 '새로움'과 '혁신'을 위해 결탁한 자본주의적 형태가 흐리고 있는 예술의 본질 그리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현재에 대한 고민. 누구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 시대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면서 현재를 되돌아볼 수 있다. 사전지식이 없어도 다니엘 벨의 사고 궤적을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각 문화와 예술의 특징적인 형태와 세계관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자본주의의 양상에 대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지닐 때 또 다른 어떤 의미를 창출하는지 우리는 다니엘 벨의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를 읽으면서 조직화된 사회에 무작정 끌려 가는 것이 아닌, 세상을 읽고 '감각'할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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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는 경제에서는 급진적이지만, 도덕과 문화적 취향에서는 보수적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경제적 충동은 그 에너지를 재화 생산에 돌리고 본능, 자발성, 변덕스러운 충동을 우려하는, 노동에 대한 일단의 태도를 형성하는 등 매우 제한적인 성격구조로 조직화되었다. 미국에서는 극단적인 청도교주의 속에서 무절제한 행동을 제약하는 법이 통과되었지만, 회화와 문학에서 부르주아의 취향은 영웅적인 것과 진부한 것으로 치달았다. 따라서 문화적 충동은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격분으로 바뀌었다.”
절제를 미덕으로 보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새로운 구속의 시작을 뜻했다. 생산의 목적은 공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이 되었고, 재화 획득의 동기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 되었다.
사치품은 필수품으로 재정의되었고 부채에 대한 공포도 깨졌다. 이제 문화는 어떻게 일하고 성취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다”
“금지된 충돌을 충족시키는 것이 전통적으로 죄의식을 불러일으켰지만, 이제는 즐겁지 못하다는 것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 욕망은 만족 될 수 없었다. 즉 해방은 새로운 구속을 낳은 것이다. 재화의 풍부함이 경쟁, 시기심, 사악함 같은 갈등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빗나가며 자원문제와 별도로 우리는 결코 ‘결핍’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침묵의 시대가 끝나고 도래한 것은 소음의 시대였다.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명암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그 근본과 질서에 대한 시야를 넓혀줬던 책이다. 1976년에 나온 책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현재의 사회·경제의 문제라 여겨지는 토픽들에 대해서까지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일부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벨의 사회학적 사유와 치밀한 모순 분석의 묘미, 그리고 그의 사회학적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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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상대에게 나는 SNS 계정 하나 만으로 나의 많은 요소를 드러낼 수 있다. 나를 치장하는 대상, 내가 머무는 공간, 그 공간을 이루는 물질들 그리고 내가 지지하는 사람과 단체까지. 그러한 취향의 나열은 내 삶의 양식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하나의 정체성이 된다. 벨이 말하는 문화란 그런 것이다. 사회, 집단 또는 개인의 감성, 감정과 도덕적 기질, 그리고 지성의 영역. 이러한 이유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수단 중에서 2021년 현재 가장 효과적인 것은 소비가 아닐까. 이제 필요가 아니라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욕망에 의해 고가의 사치재를 소비한다. 누군가에게 그 욕망은 필수적이므로 더 이상 필수재와 사치재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소비를 통해 한 집단 구성원, 직업인으로서의 나 너머의 나까지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기쁜 일이지만 그 과정이 마냥 달갑지 않은 것은 왜일까. 주말만 기다리며 버티는 수많은 직장인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주말을 고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싶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평일 내내 억눌려 있었던 '온전한 나'의 취향을 소비하고 드러냄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 갈수록 세분화하며 다양해지는 개인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에 '직장에서의 나'는 모자라다. 그럼에도 자아실현을 위한 소비에는 돈이 필수적이며, 부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직장에서 누구보다 성실해야 한다. 잘 짜인 사유의 글은 잘 짜인 이야기만큼 즐겁다. 문학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문제의식에 대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나의 생각은 학자의 논리적인 말들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불명확하여 불안했던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고 가야 할 방향을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읽기를 기꺼이 즐거워하는 이유는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하지도, 더 잘 알게 되지 않더라도 눈먼 미혹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다니엘 벨은 시장을 사회구조와 문화가 교차하는 장소로 인식한다. 따라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등장과 같은 문화의 변동은 감성의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의 변화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소도시 상인과 장인의 생활방식 변화는 대량 소비 사회의 출현으로 변화했다. 진작부터 부식하고 있었던 청교도주의는 많은 지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구조의 변화는 그것의 정당성이 상실했음을 드러냈고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본격화했다. 이처럼 변화는 먼저 문화에서 일어났지만 사회구조 자체 내에서 긍정되었을 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벨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충동과 근대성의 문화적 충동이 금욕주의에서 쾌락주의로의 이행을 이끌었다고 설명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이 시달리는 이중적인 충동에 대해 분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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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대항문화의 주역들은 전통적인 부르주아적 가치에 대한 역사적 전복 효과 떄문에, 오늘날의 문화기관들?출판사, 박물관, 화랑, 주요뉴스, 사진, 주간.월간 문화잡지, 연극, 영화, 대학?을 비록 지배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에 실제적 영향을 미친다]
과거 예술하는 사람들은 죄다 좌파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 질문 의도는 본인을 보수라고 생각하기에 왜, 예술계 사람들은 진보쪽에 기운 사람들이 많냐는 어찌보면 하소연 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관점으로 문화와 진보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다면 꼭 이 책을 추천한다. 자본주의가 야기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소득의 불평등 확대와 기회의 상실이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가 기득권 세력을 위한 장치로 변질하고 있다면, 생산 수단을 쥔 자본가가 노동을 지배하는 모습이 심화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시대가 됐고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권력과 고등 교육이 세습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계급을 만들어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불평등과 분노의 원인이라는 깨달음이 더 커져야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밝아질 수 있다. 체제에 순응만 하는 삶으로는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 한길사 대학생 서포터즈 2기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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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벨은 이 책 안에서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예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벨이 모순의 모든 해결책을 미래에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상생활의 세속적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정체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동물이다. 그렇기에 우린 자본주의사회에 던져졌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완벽한 비판적 태도 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 던져진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의 기회를 준 도서이다. 벨의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려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처해진 현실에서 문제점을 파악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벨이 설명하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 대해 더 자세히 궁금한 사람들은 꼭 이 도서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 자본주의에는 어떠한 도덕적 또는 초월적 윤리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문화의 규범과 사회구조의 규범간의 분리뿐만 아니라 사회구조 자체 내의 엄청난 모순을 부각시킨다. 한편에서 기업체는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경력을 추구하고 만족을 연기하기를-조야한 의미에서의 조직인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기업은 자신의 제품과 광고에서 쾌락, 즉각적 즐거움, 긴장을 풀고 마음을 내키는대로 할 것을 조장한다. 사람은 낮에는 성실하고 밤에는탐닉자여야 한다. 이것이 자기충족이고 자기실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