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세기 최고의 지성인 한 핵물리학자가 있었다. 그녀는 인도 최고의 지성으로 불리우며 핵개발에 여념이 없는 한 과학도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사회운동가로의 변신은 실로 충격적이면서도 지적재산권 분야의 한 획을 긋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으리라.... 실제로 특허라는 것이 선진국의 후진국에 대한 교묘한 지배정책임을 이책은 여과없이 보여준다. 나는 법학이 전공이 관계로 특허법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정당성과 타당함을 익히 배웠던 바가 있었으나 그것이 사실이 아닌 의견일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것도 지극히 편협할 수 있는,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에 특허권자가 있음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이를 과연 창조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특허를 신청하기 위한 기본 요건은 창조성이다. 그런데 그 범위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아프리카 한 민족의 유전자에는 특이성이 보이는데 이것을 연구한 학자가 약간의 변형을 가하면 그 유전자 전체에 대한 특허권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유전자는 누구의 소유란 말인가? 또한 미국의 한 비료 공급회사는 유전공학을 이용하여 해충이 끼지 않는 벼를 개발해 특허를 내었다. 그러나 해충은 그 비료를 능가할 변이를 일으키고 또 비료는 더욱 강해진다는 것은 이미 일반화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지할 점은 바로 사태의 심각성에 있다. 이 비료회사가 개발한 벼를 사용할 경우 단 한번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즉, 그 벼의 씨앗으로 다시 재생산을 할 수가 없으므로 항상 그 비료회사에서 파는 벼의 씨앗을 매해마다 사야하는 것이다. 그 단품용 씨앗은 물론 특허로 보존되고있다. 이 사태의 심각성은 그 비료회사의 비료로 인해 더이상 그 비료가 없으면 생산이 될 수 없는 토질로 인해 부득이하게 그 회사 제품을 사용해야하며, 따라서 특허료를 지불하고서라도 그 단품용 씨앗을 살 수 밖에 없으며 생태계의 기본적인 질서인 '환원'을 포기하여야 한다. 이로인한 선진국의 영원한 후진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불을 보듯 잘 알 수 가 있다. 특허가 그러한 일의 본질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특허의 목적은 개발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따르지 않으면 인간의 지적재산권은 점차 쇠퇴할 것이라는 논리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책에 따르면 이 논리를 입증할 어떠한 연구결과도 있지 아니하다고 하며 오히려 특허가 존재함으로 인해 인간의 창조성에 침해를 가하고있는 경우가 더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는 서양의 특허라는 제도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나라이다. 글리벡이라는 백혈병치료제는 제약회사의 독점으로 백혈병 환자들은 특허료 지불로 인해 약이 있으나 돈이 없어서 죽어간다. 글리벡은 고가의 약이고 그 약을 먹는다고 치료되는 것은 아니므로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한달의 600만원에 가까운 약값의 부담은 실상 약이 더이상 약이 아닌 것이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한 글리벡의 카피약(Generic)이 나와 있는 나라가 인도이다. 특허로 인해 다른 국가에서는 글리벡과 유사한 제품을 생산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인도에서 그 카피약을 수입한다는 기사가 한동안 자주 보고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카피가 그러한 개발자의 헌신과 노력을 무시할 수 있는 처사임을 간과할 수 도없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과 지적재산권의 보호중 무엇이 우선이겠는가? 물질에 대한 특허나 인간의 목숨, 의료와 관련된 특허가 과연 필요한 것시며, 정말로 특허가 존재 취지 처럼 인간을 풍요롭고 윤택한 생활의 보장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실제로 마취라는 것 또한 특허를 내려고 했으나 기각된바가 있다. 이는의료행위에 있어서는 특허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부자만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어 기본적인 헌법질서에 위반될 것이다. 그러나 점차로 특허는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이제 그 어느곳에서도 미치치 아니하는 곳이 없다. 이책을 읽음으로서 우리가 특허의 영향력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편협을 싫어하는 자라면, 좋은것인 것 마냥 홍보되고 있는 어떠한 존재에 대한 반대쪽 면을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혀 주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나는 문뜩 길모퉁이에 있는 서점으로 발을 잇게됐다. 서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구석진 자리에 아예 터를 잡고 먼지에 뒤덮힌 이 책을 나는 손에 쥐고는 집으로 향했다. 사전적으로 '약탈자'라는 말은 흔히 알고 있듯이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무리하게 빼앗는 자'를 뜻한다. 이 책의 제목인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라는 표지를 보고는 문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환경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턱없이 약하면서도 하이에나 같은 약탈자가 아닐까? 하는 이런 저런 의문으로 몰고갔다. 이 책에서는 지구 자연환경에 관한 내용과 유전공학 적인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어 고등학생인 내게 약간은 어렵게 해석되어 있는 부분이 많았다. 책의 내용은 콜롬버스의 예로부터 시작된다. 콜롬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성공과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새로 이주한 사람들로부터 학살당하고 약탈당해야했다. 이 예를 통해 저자는 현대의 민주주의를 다시 돌아온 콜롬버스에 비유한 것이다. 환경의 무차별적인 파괴와 유전자의 특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면전 아래 토지와 숲과 바다와 강, 대기가 모두 점령당하고 파괴되고 오염되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끝없는 축적을 위해 침략하고 착취할 새로운 식민지로 서 식물과 동물의 내부공간까지 넘보고 있다. 현재 우리 인간의 생존수단인 의식주 중 '주'에 속한 것 중 밥은 농업에서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는 농업에 관해 언급하기를 지속 가능한 농업은 토양의 영양물질 순환에 의존한다고 한다. 이것은 토양으로부터 나와 식물의 성장을 지탱해주는 영양 물질의 일부분 을 다시 토양에 돌려주는 것 을 포함한다. 영양물질 순환의 지속과 이를 통한 토양의 산출력은 비옥함의 원천으로서 대지를 인식하는 "신성한 되돌려 주기 법칙"에 근본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물질순환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 나타났다. 농업의 녹색혁명이 그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업의 녹색혁명 패러다임은 이러한 재생적인 물질순환을 공장과 시장에서 구입한 화학비료의 투입과 이를 통한 농업상품의 생산이라는 선형적 흐름으로 대체시켜 버렸다. 이리하여 산출력은 더 이상 토양의 특성이 아니라 화학비료의 특성이 되었다. 녹색혁명은 화학 비료를 필요로 하고 토양에 되돌려 줄 산물을 만들어 내지 않는 기적의 씨앗에 근거하고 있다. 대지는 관개용수와 화학비료의 집약적 투입이 필요한 텅 빈 그릇으로 보였다. 그러한 활동은 기적의 씨앗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며, 이는 자연의 영양물질 순환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편리하고 효능도 탁월하지만 우리의 대지의 생명을 악화시키고 과대한 사용으로 인해 대지가 황폐해지고 있다. 사막화는 오로지 시장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농업에 의해 토양 산출력의 순환이 파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역내부에서 사용되는 생물 량의 감소라는 녹색혁명 전략을 통하여 상업용 곡물의 생산증대는 달성되었다. 유기질 비료 사용이 화학비료 사용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짚 생산량의 감소는 심각한 비용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실험에 의하면, 토양 의 산출력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질소, 인, 칼륨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농업 생산력은 토양이 산출하는 생물학적 산물의 일부를 토양에 되돌리는 것까지 필연적으로 포함한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온실효과와 지구온난화같은, 화학비료가 불러일으키는 생태 파괴적 효과가 새롭게 추가 된 것이다. 질소비료는 지구 온난화를 가져오는 온실가스 가운데 하나인 질소산화물을 대기 속으로 방출한다. 따라서 화학비료는 땅, 물, 대기를 오염시킴으로써 식품의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태계를 품고있으며 지구 생물 다양성의 요람인 열대지역의 생물 다양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제3세계 국가들이 대 부분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열대지역의 일 은 녹색혁명이 생물학적 획일성과 단작에 의해서 생물양성이 고의적으로 파괴 된 예가된다. 더욱 무서운 일은 생물 다양성의 침해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생물 종 하나의 멸종은, 이 종 과 먹이사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다른 종들의 첫째,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에 국제적으로 투자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댐,고속도로,광산,양식업 등-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환경 파괴가 있다. 둘째, 농업 임업 수산업 그리고 축 산업 부문에서 단일 종의 재배를 유도 해서 이것이 다양성을 대체하게 하는 기술적 경제적인 압력이 있다. 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원인 중 첫 번째에서 물 부족 땅 부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들은 우리들의 약간의 실천으로도 풍족하진 않지만 적당히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일인당 물 사용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나 과하다 고한다. 또 땅 부족 현상은 무덤을 없애는 녹색 장묘 운동으로 임시적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외에도 광우병 문제 갯벌의 생태계문제 간척 사업문제 현재 발생하는 동강문제라든가 난지도 골프장건설 문제 유전자 콩에 관한 같은 사회적 문제 등등의 많은 과제들은 인간의 무거운 책임 아래 자연 친화적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지구의 자연환경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대 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과학 기술발전이 나 물질적인 진보가 지금 현재에는 더 좋아 보이지만 더 먼 미래를 볼 때 실질적인 이윤은 자연의 보존이 더욱 크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다양한 사람들의 협력으로 자연을 인간의 도구로 생각하는 말라빠진 고 정 관념이나 사상을 없애고 지구환경을 위한 진보적인 길 혁명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지속적이고 축척 적인 제도개혁과 이에 상응하는 시민들 우리학생들 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또 이런 희망의 대안들이 발판이 되어 하 나 둘 모일 때 자연은 비로서 인간을 다시 신뢰할 것이 다.그리고 이 책은 언젠간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또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지구의 자연환경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음으로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자연환경에 대한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에게 따끔거리는 충고를 해 준셈이 되었다. |
|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 특허에 의한 지혜의 발견, 지적 재산권에 의한 인류 공동유산의 발견... 이런 발견을 500년 전에는 교황령이, 산업사회에서는 특허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적 재산권이 시간을 넘어 이름을 바꿔 똑 같은 것을 보호하고 있다. 창조도 아니고 새로운 무엇을 생산한 것도 아닌 '발견'을 하고 한 개인의 방식으로 '정리'를 하고 어느 집단이 재조합하여 '이름' 붙인 그것을 보호하고 있다. 소유와 사유화를 통한 끊임없고 한정없는 이윤창출을 권력층, 기업, 사회지배체계를 보호하고 있다. 소유, 사유화를 통한 이윤창출은 제3세계와 생명력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있고, 인류공동의 유산인 생명을 포함한 생활방식,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온 삶의 방식, 철학,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은 자연환경과 생명과 인류공동의 유산이 이윤창출을 위해 어떻게 파괴되고 있으며 인류와 생명의 미래가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지를 전방위적으로 파악하여 이런 파괴가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 우리의 공동체적 삶의 방식, 우리의 문화유산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어에는 없는 개념인 '우리'로 살아왔던,'우리'여서 풍요로웠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 풍요로웠던 삶이 파괴된 현장에 남은 이기심, 파괴하는 생산으로써 생명력이 질식되어온 이 땅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 내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소유와 사유화의 개념이 얼마나 무섭게 자리답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사람은 인간만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를 울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써 인식하여 내가 가지면 네가 덜가지게 되고 내가 살면 네가 죽을수도 있다는 철학으로 스스로 삼가하여 욕심부리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생활철학은 덜떨어지고 미분화된 것으로 폄하되었다. 어떤 것을 발견하고 발명한 것은 나의 것, 내 가 이룩한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오면서 전해내려온 것에 내가 어떤 것을 발견하고 보탠 것임을 스스로 알고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였던 공동체적 질서는 손해보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이룩한 부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도, 개인의 인생의 질의 높히지도, 개발을 통한 경제발전이 인간을 자유롭게도, 자연으로부터 안전하게도 하지 못했다. 경제적 부로 복지가 향상되었으며 생활의 편리가 생활의 여유를 가져다 주지도 못하였다.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은 이런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써, 제3세계 국민으로써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되돌아보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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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 십년의 시간이 지났다―물론 미국의 국립인간게놈연구센터가 출범한 것은 정확히는 1990년 10월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콜럼부스의 달걀'이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 세계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인간지놈프로젝트(HGP)가 출발한지 올해로 꼭 10년째다―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한국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일본은 생명공학의 선두주자답게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올 초엔 국립게놈연구센터보다도 빨리 셀레라 지노믹스사(社)가 인간지놈 해독을 99%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그에 이어 미국과 영국의 수반이 지놈 데이터를 무상으로 공유할 것이라는 공동 성명을 세상에 공표했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제3의 물결}과 {권력이동}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신문의 과학섹션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인간게놈에 관련한 기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인간게놈의 해독에 대한 과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함의에 대한 무성한 소문과 논쟁도 이를 뒤따르고 있다. 내가 지금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게놈 관련 정보들은 고작해야 이 정도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법 오래된 {블레이더 러너}나 {가타카}를 떠올리면서 과학자들의 아무 생각없는 연구에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관련한 기사들과 논쟁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인간게놈도 예외도 아니어서 논쟁은 항상 '좋은가 vs. 나쁜가'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나는 반다나 시바를 만나기 전까지 대략 두서 권의 인간게놈 관련 책을 이미 접한 상태였다.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인간 게놈 연구가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은 게임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세상을 바꾼 이 한 권의 책'같은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지만,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해 준 이 책에 대해 나는 정말이지 감사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생물해적질(biopiracy), 지적재산권과 특허권.
도발적이면서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그녀의 선동을 한 번 들어보라: "이제 자본의 새로운 식민지는 여성·식물·동물의 내부공간(즉 육체)이다. 따라서 생물 해적질에 대한 저항은 궁극적으로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식민화, 다시 말해 자연과 관련된 비서구적 전통의 미래, 나아가 진화의 미래를 식민화하는 데 대한 저항이다. 또 이것은 다양한 종들이 진화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는 투쟁이자, 다양한 문화가 진화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는 투쟁이다."(p. 23)
그 기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95%―정확히 말하면 90%의 정크(junk) DNA를 포기할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 제초제의 증식을 통해 육성되는 '슈퍼 바이러스'의 증가, 여성의 육체를 하나의 기계로 환원해버리는 생식 혁명(reproductive revolution)의 아찔함. 녹색혁명이라는 이름도 거창한 과학의 이름아래 무시당하는 농민과 지역주민들의 생존권.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은 이런 주장을 들으면서 약간은 '그럼 그렇지'하면서 과학의 비인간화에 대한 성토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다나 시바의 이런 주장은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뿌리가 튼튼한 웅변이다. 즉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대안없는 비판'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정크 DNA'나 생물학적 환원론―DNA→RNA→Protein(단백질)라는 정보 전달경로의 일방향성―, 그리고 인간종 자체의 기계적 재생산가능성, 종자의 개량 등등은 이미 1950∼60년대를 거쳐 70년대까지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던 분자생물학에서 그야말로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던 이슈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윤리적인 비판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문제가 많은―다시 말해 실현불가능하다는 비난과 비판을 동시에 받아왔던 미망(迷妄)들이다. 시바의 입장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이 논쟁의 과정에서 나온 말 중의 하나가 '문화로서의 과학'(science as culture)이다. 그런데 이 괴물이 어떻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자연자원에 대한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이라는 바이러스 덕분이다.
특허를 통한 자원이용의 사유화―다국적 제약회사와 종자회사(우리 귀에도 익숙한 미국에 본부를 둔 몬센토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가 바로 범인이다―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길래 비난의 타겟이 되는가? 어렵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생물체와 자연에 대한 소유와 독점권 행사는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생활환경에 대한 관심을 버리도록 한다. 누구도 더 이상 나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당신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기 바란다, 진정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 하나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생태주의라고 한다. 반다나 시바의 책 역시도 생태주의와 페미니즘, 지역 자치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생태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와 고립이 아니라 관계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발상이다. 미생물과 농업용 종자 문제에 대한 시바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그녀와 어떤 망상(網狀, network)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1997년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진 상처 중의 하나가 바로 억울함이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가하는 원통함 말이다. '세계화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말은 단지 약간의 진통 효과만을 가질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근본적이다. 그러하기에 근본적인(radical) 시각이 필요하다.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위안과 평화가 아니라,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자유의 촉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한 반(反)세계화론자가 우리에게 준 선물을 선택하고 그에 화답하는 것은 독자의 의무이자 권리일 것이다. 그녀의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책을 덮는다:
자유무역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미 세계무역의 70%를 장악한 초국적기업(TNC) 의 이익에 세계적인 무역은 절체절명의 것이다. 특히 IMF, IBRD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제하는 민영화와 규제철폐는 자국내 산업기반을 외국의 TNC에 넘겨주고 농민과 노동자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부당하게 대우받아온 데 비해, '그들'은 불공평하게 특혜를 받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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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민 등 700여명이 18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홍콩 도심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전원 연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불법 행위로 인해 한국인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홍콩 일부 언론들은 1967년 반영(反英) 폭동 이후 가장 혼란한 폭동 수준의 시위였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신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외교부 차관을 19일 오전 홍콩에 긴급 파견, 홍콩 당국에 연행자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키로 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의 줄기 세포 체취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로 인해 나라가 시끄럽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만하다.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은 앞으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생명공학을 앞세운 초국적기업들의 약탈을 고발하기 위해서 씌어졌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 세기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대단히 낯선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척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생명체에 특허를 부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낯선 경험인가.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리 잡기 위해서 수많은 공유지에 울타리가 쳐지고 대대로 그 땅을 이용해 오던 민중들이 내몰림 당하면서 공유지가 사유화 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생명특허가 결코 낯선 것만을 아니다. 토지로부터 시작한 사유화의 경험을, 반다나 시바는 식민화되지 않은 마지막 영토라고 말하는 생명체 내부공간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도 마다 않고 쫓아간다는 초국적기업들의 발걸음은 항상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지만, 결국 그곳에서 겪게 되는 경험은 지난 500여 년 동안 우리가 무수히 겪고 또 겪어왔던 착취와 억압, 민곤과 파뢰임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다음 세기에 뜨거운 쟁점이 될 많은 의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앞으로 생명공학 관련 문제들이 불러일으킬 사회, 경제, 문화적인 파문은 엄청날 것이며, 다음 세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지난 천년이 석유나 지하자원 등의 물리적 자원을 둘러싼 전 세계적 갈등의 시대였다면, 과학 기술의 엄청난 진보와 함께 새 천년에는 생물의 유전자원과 생물 다양성을 둘러싼 전 세계적인 이해관계의 차이가 갈등의 핵심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생물 다양성과 그것을 관리하고 이용해 온 토착민들의 지식체계가 갖는 중요성 및 그들의 권리, 파괴와 갈등을 종식시키기로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가 될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의 필연적인 연관관계. 생물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며 제3세계 민중들을 빈곤에 몰아넣고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명공학의 위험성 그리고 초국적기업의 역할. 더 나아가 제1세계에서는 학자들 사이의 논쟁거리에 불과하지만 제3세계에서는 생존의 문제인 현대 과학기술의 성격에 대한 비판. 자유무역을 앞세워 제3세계 민중들과 자연을 착취하는 WTO, 특히 지적재산권협약의 위선과 비합리성. 이 책의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소외되고 착취 받아 온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제3세계 여성의 눈으로 이 방대한 의제들을 바라보면서 그 관련성들을 밝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