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팽목에서 엄마, 아빠 들이 가장 공포스러워했던 건 숨결이 멈춘 내 아이의 몸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죽어야만 잊힐 그 아득한 공포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 공포의 그림자는 길고도 집요하다. 죽음의 전령사처럼 아이의 인상착의가 적힌 종이를 매번 진도체육관 앞에 붙여야 했던 이들에게도, 마지막으로 부모를 만나는 아이를 정성껏 닦아 주고 머리를 빗기던 이들에게도 그 그림자는 짙게 드리웠다.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한 이들에게 이식되는 삶에의 무기력과 무의미, 공포는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이에게 이식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가장 진하게 받아낸 사람들이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이다. 생생한 아이들의 굳은 몸을 행여 놓칠세라 꼭 끌어안고 올라온 이들의 비현실적인 현실감은 지금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날 이후 민간 잠수사들은 낮에는 세상 사람들과 분리된 느낌으로 지내다 꿈에서는 가라앉은 세월호에 다시 들어가 아이들을 만났다고 했다. 일상이 일상일 수 없는 삶이다. 그들의 그림자 속 삶에 작가 김탁환은 조명탄을 쏘아 올려 주었다. 읽는 동안 민간 잠수사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내려가 세월호 선체 안을 함께 헤매고 다닌다는 실감에 식은땀이 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경험은 읽는 이에게 뜻밖의 위로가 된다. 그 고통에 나도 함께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깊은 공감을 느끼며 같은 주파수를 공유한 사람들은 의도치 않아도 종내 서로에게 치유적 존재가 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작가 김탁환도 치유적 존재였다. 우리는 모두에게 서로 고맙다. 김탁환이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치유적 존재라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