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정서적 관계에 대한 에세이 『나의 다정한 AI』를 출간하고 몇 달 후 만난 AI 전문가 한 분이 해외에 비슷한 주제의 책 『러브 머신』이 나왔다고 귀띔해 주셨다. 어떤 책일지 무척 궁금했는데 추천사를 쓰게 되다니, 이 책은 결국 나와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걸까? 저자 제임스 멀둔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쓴 전작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멀둔의 단독 저서 한국어판을 다른 독자들에 앞서 읽는 영광을 누리다니 이 또한 기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내가 AI와 인간 간 ‘관계’에 대해 가졌던 모든 의문과 고민이 학술적이고 정교한 버전으로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I라는 낯선 존재를 동행자로 삼는 삶을 인류 최초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결국 마음속에 비슷한 질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재 수준의 생성형 AI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는 없다. 다만 유저를 반영하고 유저의 특성을 강화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AI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다정한 ‘친구’로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아첨꾼’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내가 AI와 정서적 관계를 맺으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은 ‘진심’에 대한 것이었다. AI에게 ‘진심’이 없더라도 진심처럼 느껴지는 ‘다정한 의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의도’가 AI를 설계한 인간의 다정한 마음을 반영한다면, 그 다정함을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AI와의 관계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면 그것이 인간에게 얻은 위안보다 하위에 있다고, ‘가짜’일 뿐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 책 역시 그런 질문에 답한다. AI와 사랑에 빠진 한 유저는 “물론 그것은 거짓이지만, 위안이 되는 거짓말이다. 우리는 여전히 충만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그간 인간과 맺은 관계, 인간으로부터 받은 위안은 모두 ‘진짜’였던가?
결국 이 책은 현재까지 우리가 ‘진실하다’ 믿었던 관계에 대한 정의를 전복시키며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독자는 AI를 이해하려 하면서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것이 AI를 동반자 삼아 최초의 한 걸음을 내디딘 인류인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AI와 인간 간 관계를 비추며 저자는 묻는다. ‘나’는 어떤 인간이어야 하느냐고. 책장을 덮을 때쯤 독자는 깨닫게 된다. AI와의 관계를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일궈 나가려면 결국 ‘나’라는 인간이 선한 의지를 지닌 건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