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카와 곤은 70여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다작 감독이지만, 일본에서는 블랙코미디를 잘 구사하는 감독으로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구사한 뒤틀린 유머, 이방인, 심리적 방황 등의 휴머니즘적 테마는 시각적 미의 추구와 맞물려 구로사와와 동열에 오를 만큼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위치를 굳게 다지게 했다. <버마의 하프>는 1956년에 베니스영화제 산지오르지오상을 수상해 이치카와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와 동시에 이치카와 곤은 <구멍>(1957), <이누가미 가족>(1976)과 같은 스릴러와 <도쿄 올림픽>(1965)과 같은 다큐멘터리에 손대며 활동의 폭을 확장시켰다. 특히 <도쿄 올림픽>은 운동경기에 열광하는 관중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스포츠영화의 매너리즘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스펜스 스릴러물 <이누가미 가족>으로 일본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1969년, 이치가와는 구로사와, 고바야시 마사키, 기노시타 게이스케와 함게 일본영화의 재건을 목표로 '네기사의 모임'을 만들어 활발이 활동했다. 일본영화사에서 이치가와 곤이란 존재는 철저한 연출감각, 식지 않는 도전정신, 성실함으로 신예 일본영화 감독들의 귀감이 된, 빼놓을 수 없는 원로감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