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화폐이론은 경제에 존재하는 화폐가 기본적으로 민간의 경제활동, 특히 기업의 생산 활동과 민간은행의 대출 행태에 의해 그 양(그리고 더 나아가 그 구성)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화폐량 공급을 통한 중앙은행의 경제 통제 능력은 상실되고, 중앙은행의 경제 운용은 이자율 조정 형태로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이론은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유일한) ‘화폐이론’으로 소개되는 ‘외생’화폐이론과 정면으로 부딪힌다. 이 후자의 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마치 헬리콥터에서 길거리에 돈을 뿌리듯) 화폐량을 ‘독립적’으로 결정하여 경제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조정할 수 있으며, 이자율은 그렇게 결정되는 화폐공급과 민간 화폐수요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된다.
이 책은 내생화폐이론, 특히 포스트케인지언의 내생화폐이론을 매우 체계적이고 포괄적으로 논의한다. 화폐이론의 특성상 이 책이 현실 경제의 분석에 대해 갖는 함의는 실질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화폐 외생성에 근거한 주류 경제학의 화폐관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은 경제이론과 경제학설사의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한다. 독자들은 화폐의 본질, 화폐가 경제의 불가결한 요소로 작동하는 생산적 화폐경제, 케인즈가 생애에 걸쳐 전개해온 화폐관의 일관성, 1980-90년대에 포스트케인지언 내생화폐이론 내에서 격렬하게 진행된 논쟁, 케인즈 경제학에서 익숙한 개념인 유동성 선호와 투자승수 개념 등을 내생화폐이론의 틀 속에서 비판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접하며 화폐이론의 역동성을 느낄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이 그런 주류 경제학의 무책임과 화폐이론의 역동성을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이 한글 번역은, 특히 역자의 깔끔한 번역은, 높이 평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