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가렛 미첼은 1900년 11월 8일,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출생하여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으로 남부의 역사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그는 남북 전쟁 당시의 인물에 대한 전기를 즐겨 읽었으며 전쟁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1914년 애틀랜타의 워싱턴 전문학교에 입학해서는 장편 소설 『네 여자』, 단편소설 『어린 동생』등을 쓰기도 했다. 이후 의대를 지망하여 스미스대학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어머니의 사망으로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그후 『애틀랜타 저널』에 입사하여 뛰어난 인터뷰 기사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직장 동료였던 존 마시와 결혼한다.
1925년 발목 부상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3년간의 긴 집필 기간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집필하지만 원고가 출판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6년간이나 원고를 벽장 속에 묵혀둔다. 그런데 1936년 이 작품은 우연한 기회에 맥밀란 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어 그녀 자신도 놀랄만큼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후 그녀는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명성을 뒤로하고 절필을 선언했으며 두 번 다시 창작하는 일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194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꽃무늬를 박은 초록빛 새 옥양목 드레스는, 버팀살 위로 10미터나 물결치며 쏟아져, 아버지가 최근에 애틀랜타에서 사다 준 뒷굽이 편편한 초록빛 모로코 가죽 신발과 멋지게 어울렸다. 드레스는 인근 3개 군(郡)에서 가장 가느다란 33센티미터 허리를 완벽하게 드러내 주었고, 몸에 꼭 끼는 짧은 웃옷은 열여섯 살치고는 잘 발육한 젖가슴을 돋보이게 했다.
제럴드는 농장주가 되고 싶었다. 한때는 조상들이 소유하고 사냥했던 땅 에서 소작인 노릇을 해야 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깊은 갈망을 경험한 그는 눈앞에 푸르게 펼쳐진 광활한 자신의 땅을 보고 싶 었다. 무자비할 만큼 한 가지 목적만 추구하던 그는 자신의 집, 자신의 농장, 자신의 말, 자신의 노예를 갈구했다. 그리고 곡식 과 창고를 바닥내는 세금과, 언제 몰수를 당할지 몰라서
하지만 스칼렛은 잘못 알고 있었으니, 이렇듯 오랜 세월이 흐르기 전, 서배너의 엘렌 로비야르는 그 매혹적인 해안 도시의 열다섯 살 난 어느 계집아이 못지않게 이유도 없이 걸핏하면 킬킬거렸고, 기나긴 밤이면 친구들과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한 가지만 빼놓고는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었다. 그녀보다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나 위였던 제럴드 오하라가 그녀의 삶에 등장한 것이 이때였고,
그녀는 어쨌든 자기하고 애슐리가 짝이 맺어진다고 해도, 그녀의 아버지와 엘렌 로비야르 오하라가 부부로 맺어진 것보다 조금도 해괴할 바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출신과 가문, 그리고 생각하는 바가 그토록 차이가 많은 두 사람을 어디에서도 찾아내기가 힘들 정도인데도, 아버지처럼 시끄럽고 무감각한 남자가 어떻게 어머니 같은 여자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스칼렛은 항상 그렇
「난 은쟁반에 담아다 준다고 해도 케이드는 받아들이지 않겠 어요.」 스칼렛이 격분해서 소리쳤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 사람 은 나한테 그만 떠맡기셨으면 좋겠어요! 난 타라도 싫고 어떤 해묵은 농장도 싫어요. 따지고 보면 농장이라는 것도-.」 그녀는 <한 여자가 원하는 남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 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온 세상에서 엘렌을 제외하고는 그가 가 장 사랑
「아, 아빠.」 스칼렛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만일 내가 그 남자와 결혼한다면, 그런 건 모두 내가 고쳐 놓겠어요!」「그래, 아무렴, 네가 고쳐 놓겠다 이 얘기지?」 딸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제럴드가 떠보듯 말했다. 「그렇다면 넌 애 슐리는 고사하고, 온 세상 어떤 남자에 관해서도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얘기야. 세상에는 남편을 손톱만큼이라도 바꿔 놓은 아내가 한 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