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듣는다
사랑에 관한 오래된 오해 하나는, 아이를 위해 꽃길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오아시스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막을 다 건넌 뒤에야, 아니 사막이 사막인 줄도 모르고 헤매다 무릎이 꺾인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물가 말입니다. 이 책은 가장 뜨거운 사랑이 어떻게 가장 메마른 사막이 되는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가 어떻게 솟아오르는지를 나직한 목소리로 그려 냅니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가 무대 위의 별이 되기를 바랐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며 우리는 알게 됩니다. 별은 무대 위에만 있지 않았고, 객석을 채운 수많은 작은 불빛이 저마다의 빛으로 이미 눈부셨다는 사실을요. 야구가 하고 싶다던 아이의 작은 목소리를, 밤마다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던 불빛을, 우리가 진작 별빛으로 읽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빛을 우리 역시 너무 자주 놓치며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미안하다’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이제야 듣는다’로 바꾸어 읽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진짜 회복은 화려한 성취가 되돌아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듯 보이던 자리에서, 엄마가 마침내 아이의 노래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에 있습니다. 멈추어야 비로소 나아가고, 침묵을 끝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첫마디를 건넬 수 있다는 역설을, 이 책은 서두르지 않고 보여줍니다.
긴 침묵을 깬 것은 한 곡의 노래였습니다. 분노로 돌아보지 말라고 나직이 읊조리던 그 노래처럼, 이 책은 지나온 시간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다만 뒤늦은 사랑의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를 물을 뿐입니다. 떼창 속에 자신의 후회를 묻으며 아이와 같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배웁니다. 용서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같은 노래를 나란히 부르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를 아프게 한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책의 자리에 오래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늦어도 괜찮다고, 지금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이 책이 우리의 어깨를 마음 담요로 부드럽게 감싸 주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책을 덮는 당신의 하루에도,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작은 오아시스 하나가 고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