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희의 사유는 “순간이 억겁이고 찰나인 나날들”에서 해묵은 씨앗을 발아하는 반추의 방식에서 진실에 맞서는 힘을 키운다(「못」). 그녀의 화법이 범상한 듯 비범한 이유는 정주하는 시간 안에서 시간이 숙성되는 탓이리라. 잠깐 타오르는 것일지라도 그 불씨에 의지하여 시인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변영희는 감각에 조응하여 투망을 걷어 올리듯 비선형적 의식의 흐름을 낚아내는 재주가 있다. 「여긴 어디죠?」에서 찰나의 파동이 극화되는 형식을 보라. 파밭을 스치면서 시인은 올리브그린 색채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 감미로운 발흥은 곧장 밭 가장자리 호박들이 “검은 심장을 끌어안”고 “서로 기대어 무너”지는 역설과 부딪힌다. 삶의 고단함을 가리는 담장에 “물고기와 잠수부”를 그리자 삶의 거처는 “깊은 바다”가 된다. 여기서 시인은 현실과 상상이 긴장 속에 유지하는 어느 균형을 무의식적으로 성취한다. 파밭에 “열렬한 고요”가 쏟아진다. “귓전에 파고드는 벌레들의 노래”가 울린다. 고통은 직접 발화되지 않고 다만 그 흔적으로 정제되어 일렁인다. 바라면서 기다리는 것, 이것이 힘든 삶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결핍의 감정을 물결처럼 흘려보내는 무심한 어투에 귀를 기울여 보라. 감각과 의식의 춤이 직조하는 풍경은 저물녘 갈대밭처럼 구체적이면서 추상적이다. 변영희는 생의 굽이마다 시간의 흔적을 “염탐”하고(「개미」) 그 버거운 그림자를 헹궈 냄으로써 뭔가를 새롭게 발색하는 재치에서 뛰어나다. 견인주의적 자의식과 휘발성 상상을 거쳐 다시 마주하는 현실은 어느덧 참을 만하다, 때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렇듯 발랄한 호흡 그리고 “부드러운 말맛”을 벗 삼아 변영희는 필생의 현주소를 시적 체온으로 육화하려 분투하고 있다(「부드럽게,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