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은 내가 짜준 목도리를 하고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벚꽃 보러 갈까?
- 살아 있을 수 있으면.
- 약속하면 살아 있을게.
짧은 삽화지만 소설 한 편의 무게를 능히 감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진 헤밍웨이의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은 적 없습니다.) 보다 한 수 위다. 하명희의 소설들은 따뜻하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나면 어느새 가슴이 따뜻하게 덥혀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그 안에 어떠한 긴장도 고민도 없이, 그저 세상을 좋게만 바라보려는, 사실상의 방관에 다름없는 온정주의적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따뜻함에는 확실한 방향성이 있다. 그의 따뜻함은 이 세상의 뒤틀림과 그릇됨에 의해 상처받은 존재들을 향해서만 열려 있다. 그것은 따뜻함이되 ‘당파적 따뜻함’이다. 장편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와 소설집 불편한 온도(2018)의 세계는 신자유주의적 야만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의 근원적 적대성과 악마성이 만들어 낸, 패배와 좌절, 추방과 유랑, 상처와 죽음으로 가득한 매우 끔찍한 지옥도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하명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마치 우는 아이를 안아주는 엄마처럼 그 모든 고통의 주체들을 품어 안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듣는 이들도 덩달아 그렇게 그 품에 안겨 있다 보면 어느새 알 수 없는 힘이, 희망이, 고요히 스미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도저한 따뜻함은 어디서 오는가? 여기 실린 18편의 또 다른 이야기들은 대부분 매우 짧은 이른바 장편(掌篇)들인데 하명희의 그 따뜻함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짧지만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하명희 소설의 밑그림들이라 할 수 있다. 이웃의 소녀와 고양이, 불량소년들, 룸펜 프롤레타리아 청년들, 시장의 생선장수, 농촌노인, 글 못 쓰는 작가들, 반지하방 이웃, 시설 수용 청소년들, 노숙자들 등, 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작가가 자기의 일상세계 속에서 오가다 만나고 헤어지는 온갖 사람들이 다 들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로 엮일 수조차 없이 하찮고 미미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하찮고 미미한 것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결코 하찮고 미미하지 않다.
하명희는 이 모든 하찮고 미미한, 그래서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깊고 따뜻한 시선을 던지고, 그들의 삶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섬세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선과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마치 감염된 듯 그들과 우리가 보이지 않는 질긴 인연으로 연루되어 있으며 우리 하나하나가 그들의 ‘하찮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연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게 바로 하명희 소설의 따뜻함의 기원이다.
그리고 세월호 이야기 『배가 들어오는 날』, 여순사건 이야기 『그 밤, 잠의 꽃밭에서』, 가난한 이웃과의 공명을 다룬 ?청자의 노래?, 참척의 슬픔을 극복하는 가족이야기 『종달리』, 악연의 가족사에 대한 성찰 『보리차를 끓이며』 등, 이 짧은 이야기들과 함께 묶여 넘어가기엔 아까운 주옥 같은 단편들은 하명희 문학세계의 또 다른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명편들이라는 것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