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영남의 유학자로, 본관은 의성, 자는 간부, 호는 구사당이다. 밀암 이재를 사사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대산 이상정과 함께 영남 사림의 종장으로 추중받았다. 부친 제산 김성탁이 제주와 광양에서 귀양살이 할 때에 10년 간 혈성으로 모시어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효행과 학문뿐 아니라 문장에도 뛰어나 밀암의 간찰과 함께 구제밀찰(九祭密札)이라 일컬어졌으며, 그 제문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구사당집(九思堂集)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