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시는 고백, 관찰, 묘사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어느 만큼 세월을 살아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간직하고 살게 마련이다. 고백은 그 응어리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거짓 없는 진솔한 고백은 타인에게 울림을 준다. 딱히 선지식의 선문답 같은 고매하고 아리송한 높은 수준의 큰 깨달음을 담고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고백이 지니는 미덕은 진솔함이 생명이다. 그것은 오랜 생각 끝에 얻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순간 스쳐가는 번갯불 같은 깨달음이나 번뜩이는 시상이 아니라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우러나오는 슬로푸드의 깊은 장맛 같은 고백이면 족하다. 고백과 같은 진술이 지니는 미덕도 있지만 시를 쓰는 시인이라면 누구도 관찰과 묘사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묘사는 일반적으로 서경적 묘사와 심상적 묘사로 나뉜다. 서경적 구조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적 묘사라면 심상적 구조는 마음으로 그리는, 비현실적이고 개성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내면에 있는 그 모든 감각과 울림을 100% 이상 끌어낼 수 있는 게 심상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서경적 묘사든 심상적 묘사든 그 어느 것도 관찰이 전제되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치밀하고도 적확한 관찰만이 선명한 묘사를 가능케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비로소 생생한 묘사를 할 수 있다.
이신재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내가 받은 첫인상은 시인의 시선이 매우 따뜻하다는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신재 시인의 시에서 만나지는 많은 꽃들의 이름이 우선 반가웠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시를 쓰면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나무와 꽃을 많이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시인의 꽃에 대한 여러 시편들을 읽으며 시인의 아름다운 꽃에 머문 시간의 이력과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