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속도를 견디다 박살 난 몸, ‘아픈 몸’은 명백한 물질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어떤 몸들은 ‘일하다’와 ‘아픈 몸’ 사이의 연결을 증명해 내기가 어렵다. ‘일하다 아픈 몸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가 우선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꼬인다. 정당한 노동의 가치란 자본주의 산업에서 신기루다. 착취는 늘 과잉 착취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표준적인 몸”도 마찬가지다. 가느다란 표준의 바깥으로 밀려난 몸들은 얇은 치즈를 감싼 햄버거 빵처럼 두텁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은 여자들의 아픈 몸이 더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픈 여자들이 보여 준 일의 세계는 그곳에 함께 거주하는 남자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이주 노동자들의 몸들, ‘모두의 몸’을 들여다보는 평등과 연대의 렌즈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