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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뒤낭
해외작가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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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뒤낭
해외작가 인문/사회 저자
제네바의 경건한 칼뱅주의자 가문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이 부진하여 퇴학당한 후 수습 기간을 거쳐 은행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결단력이 있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처음 방문한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곡물 사업을 시작했다. 물을 마음껏 이용할 권리가 필요했다. 프랑스 식민지 관료들이 도와주지 않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를 직접 만나 탄원하기로 결심한다. 황제가 이탈리아 북부에 있음을 알고 배를 타고 거기까지 갔다. 그곳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전투의 참상을 목격한 후 인도주의 활동을 결심한다. 자비로 솔페리노의 회상1862을 출판했다. 그리고 유럽을 움직이는 인사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제네바협약1864이라는 인류사의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초석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계산이 빠른 사람은 아니었다. 알제리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파산선고를 받았다. 뒤낭은 서서히 잊혀졌고 가난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스위스 동북쪽 작은 양로원에 신세를 지며 살던 시절, 인류 최초의 노벨상을 받았다1901. “당신이 아니었다면 적십자도 19세기 최고의 인도주의 성과도 이뤄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노벨위원회의 축사가 노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뒤낭의 말년을 담아준 양로원은 현재 ‘앙리 뒤낭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후 생을 마감했다. “인류애는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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