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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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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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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학경의 『딕테』는 그녀가 남긴 유일한 텍스트이면서 다양한 비평적 시각에 의해 조명되어온 현대의 고전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작은 책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비평적 탐사를 허용하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딕테』는 억압된 자의 시각과 목소리로 소수민족의 역사를 아방가르드적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이 열 개의 이야기, 또는 산문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파편화된, 통합성과 유기성을 상실한, 분산된 반리얼리즘적 플롯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기 위해 어떤 기억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 이방인, 이민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텍스트에서는 메시지 자체보다도 언어 실험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 속에는 두 개의 ‘딕테(받아쓰기)’가 존재한다. 제1의 받아쓰기는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강제된, 명령된, 수동적 받아쓰기요, 제2의 받아쓰기는 아홉 명의 뮤즈에 접신하여 여성 중심적 꿈과 기억과 상처와 사랑으로 민족적, 개인적 자아의 우주를 창조하려는 능동적 받아쓰기다. 첫 번째 받아쓰기는 상징계 속의 아버지의 받아쓰기요, 두 번째 받아쓰기는 상상계 속의 뮤즈의 받아쓰기, 어머니의 받아쓰기라고 하겠다. 차학경이 비극적인 죽음으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이상이나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경이로운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언어적 실험을 더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 어떤 시는 한번 읽으면 그 시를 읽지 않은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한다. 나에게는 신철규의 「심장보다 높이」라는 시가 그러했다. 시네포엠같이 잔잔하게 이미지가 흐르는 시. 그럼에도 이미지 과잉은 아니고 꼭 적절한 이미지로 최소의 서사를 펼쳐가는 시. 김종삼이 말하는 시네포엠에 가장 가까운 시가 아닐까 한다. 이 시를 읽은 후 욕실 속의 욕조를 볼 때마다 캄캄한 정전이, 물의 재난이, 침몰의 공포가, 스틱스라는 저승의 강이, 헐떡이는 심장이, 몸의 위태로움이, 욕실 문을 긁는 고양이의 발이 느껴진다. 물이 심장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재난과 그 악몽! 아, 이런 공포의 액체적 상상력은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자꾸 그 시를 생각하게 된다. 이 표제시를 비롯하여 『심장보다 높이』에 실린 시들은 거의 비가의 느낌을 준다. 비가는 때로 연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침몰이라는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의 불안과 애도의 우울과 사랑을 그린다. ‘나’보다 키가 작은 연인이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 ‘나’에게 심장을 맞추는(「빛의 허물」) 사랑의 묘사에서 나는 죽음의 신화에 맞서는 인간의 따스한 몸의 저항을 느꼈다. 몸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럼에도 “붉게 달아오른 피가 온몸에 장미 문신을 그려놓는”(「침묵의 미로」) 사랑의 순간은 소멸에 맞서는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몸도 허망하고 시간도 삶도 허망하지만 타인의 아픈 심장에 나의 슬픈 심장을 맞추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이 보여주는 생명의 눈부신 약동이자 문학의 윤리다. 시는 곧 임상이자 의료라는 것을 신철규의 아름다운 시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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