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경의 『딕테』는 그녀가 남긴 유일한 텍스트이면서 다양한 비평적 시각에 의해 조명되어온 현대의 고전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작은 책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비평적 탐사를 허용하는지 경이로울 정도다. 『딕테』는 억압된 자의 시각과 목소리로 소수민족의 역사를 아방가르드적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이 열 개의 이야기, 또는 산문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파편화된, 통합성과 유기성을 상실한, 분산된 반리얼리즘적 플롯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기 위해 어떤 기억을 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 이방인, 이민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텍스트에서는 메시지 자체보다도 언어 실험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책 속에는 두 개의 ‘딕테(받아쓰기)’가 존재한다. 제1의 받아쓰기는 학교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강제된, 명령된, 수동적 받아쓰기요, 제2의 받아쓰기는 아홉 명의 뮤즈에 접신하여 여성 중심적 꿈과 기억과 상처와 사랑으로 민족적, 개인적 자아의 우주를 창조하려는 능동적 받아쓰기다. 첫 번째 받아쓰기는 상징계 속의 아버지의 받아쓰기요, 두 번째 받아쓰기는 상상계 속의 뮤즈의 받아쓰기, 어머니의 받아쓰기라고 하겠다. 차학경이 비극적인 죽음으로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이상이나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경이로운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언어적 실험을 더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