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일 시인은, 그보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을 먼저 만났다. 오래 전 여행열차에 나란히 앉았던 분이 ‘글이 참 좋다’며 읽어보라고 건네준 『살구나무 빵집』(2018년 출간)이었다. 시집에서 읽은 그의 시는, 누구하고도 닮지 않은 독특한 서정이 좋았다는 기억이 있다. 그 2년쯤 뒤에서야 우연히 시단 여럿이서 그를 대면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도 아니고 시인도 아닌, 모르는 사람으로서 먼저 『살구나무 빵집』을 만났으니 어떤 편견도 없이 ‘글이 참 좋다’는 지인과 ‘누구하고도 닮지 않은 독특한 서정이 좋다’는 내 생각은 오로지 시집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문제는, 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뒤표지에 붙일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고 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뇌출혈 수술로 우뇌가 폐기돼 제대로 말도 못하고 버벅거리는 놈이, 형 아우 하며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덜컥, 글을 쓰겠다고 했으니.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이유가 또 하나 있긴 하다. 어쩌자고 시인이 출간할 두 번째 시집 ‘백여 편의 시를, 초고부터 교정지까지 몽땅 들여다봤다’는 거다. 산문은 오래 전부터 독보적인 경지에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겨자씨의 문장』이라더니 긴 시는 물론, 예전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짧은 시마저 왜 이렇게 좋단 말인가. 백팔번뇌, 하다가 짧은 시 「곡우 무렵」을 붙여 포전인옥(抛?引玉), 벽돌을 던져 옥을 얻는다는 잔꾀를 냈다.
“병을 걱정해주면서도/ 벗은 자꾸 잔을 채워준다/ 봄비도 낙화를 걱정해주면서/ 종일 꽃나무를 적시는지”
시에 대한 평론가의 해설이나 시인의 서평은 ‘시를 음미하는 법’이라는 하나의 지침일 뿐. 그저 눈을 감고 찬찬히 절기 곡우(穀雨) 무렵, 비 내리는 어느 곳에선가 벗과 대작하는 장면을 그려보라고. 그리하면 김보일 시인이 시를 쓰는 마음의 태도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