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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만
국내작가 종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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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만
국내작가 종교 저자
1978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82년 사제가 되었다. 서울대교구 연희동 성당 보좌 신부로 재직하다가 1984년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 신학을 전공하였다(S.T.D). 1991년 귀국하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의 신학 교수로 재직하였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신학위원회 위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생명윤리연구회 위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신학위원, 교황청 신앙교리성 국제신학위원회 위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처장 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6년 주교품을 받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장,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직을 맡았다. 현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위원장이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이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성경에 대한 신부님의 사랑은 그분의 사제적 헌신에서 잘 나타납니다. 불모지였던 당시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홀로 우리말 번역작업을 시작해 메추라기를 사육해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개신교와 공동으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하셨습니다. 성경의 「공동번역」 원문 번역을 신부님이 전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공동번역」을 마치지 못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다 「공동번역」이 끝나자 “하느님께서 이제 우리말을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창세기 50장에 요셉이 형제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강의하던 신부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신부님은 참으로 신학생들을 사랑하셨고, 우리 민족과 우리말을 사랑하셨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을 사랑하셨으며 매시간 최선을 다해 사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님은 우리와 함께한 작은 거인이며 성인 사제입니다.
  • …남상교 아우구스티노는 많은 한시를 남겼습니다. 충실한 신앙생활을 드러내는 천주가사 〈경세가〉가 있지만([경향잡지]1933년 9월호), 『우촌시고』에는 박해로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는 한시들만 남아 있습니다. 당시 남인계 인사들과 친분을 나누며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시에는 당시 교류하였던 시인들의 모임인 매사(梅社)라는 이름이 드러납니다. 본인은 한시 문학에 문외한으로서 그의 시의 문학적 깊이를 알지는 못하지만, 세상의 번잡함을 떠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리는 비, 낙화, 버드나무 등 아주 작은 사물들과 움직임에서 세밀하게 찾아내고, 변화하는 계절에 빗대어 자신의 외로움, 이별, 슬픔, 초연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하여 살아가던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입니다. 문학에 조예가 있는 분들은 『우촌시고』에서 깊은 문학적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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