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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식
국내작가 종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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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식
국내작가 종교 저자
조은식 박사는 세인트 존스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대학교대학원에서 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오하이오 유나이티드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필리핀 실리만대학교 교수를 거쳐 장로회신학대학교 선교학과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숭실대학교 교수로 봉직중이고, 한국키에르케고어 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통일선교』(서울: 미션아카데미, 2007), 『삶에서 찾는 문화선교』(서울: 숭실대학교 출판부, 2009), 『선교와 통일』(서울: 숭실대학교 출판국, 2014), 『통일선교담론』(서울: 나눔사, 2020) 등이 있고, 다수의 통일 관련 논문과 공저가 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성찬의 위로」는 7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누가복음 22:15는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먹자는 말씀이다. 마지막 식사를 하자는 말씀이다. 이 마지막 식사가 예수의 죽음을 의미하는 성찬이 되었다. 2장 마태복음 11:28은 잘 알고 있는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성찬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무거운 짐은 우리의 죄책과 죄의식이다.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고 속죄가 이루어짐을 통해 쉼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내게로 오라는 초대는 구원자만이 하실 수 있다. 성찬은 주님의 초대에 응하여 죄의식의 짐을 지고 주님 앞으로 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은밀히 죄책을 고백함으로 영혼의 쉼을 얻게 되는 일이다. 여기에서는 성찬이라는 초대에 응하는 사람의 자세가 강조된다. 3장 요한복음 10:27은 양은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은 양을 아신다는 말씀이다. 성찬대에서 주님의 종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 성찬은 헛될 수 있다.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분도 나를 모를 것이고 나는 그분께 속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성찬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받았을 지라도 그분이 나를 모르면 내가 받은 성찬은 무의미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일과 그분이 나를 아시는 일이 강조된다. 4장 고린도전서 11:23은 성찬식때 많이 사용되는 말씀이다. 이 부분에는 키르케고르의 역설적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분은 왕으로 대환영을 받지만 조롱을 받는다.’ ‘자색옷을 입었으나 모욕으로 입게 된다.’ ‘사람들이 그분을 왕으로 선포하려고 했을 때 도망치셨다.’ ‘그분을 체포하러 왔을 때 파수병을 만나러 가셨다.’ ‘유다의 배신의 입맞춤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키르케고르는 인류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현재 사건에서의 공범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류가 속죄자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현재 속죄자가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배신했지만 그분은 화해의 성찬을 제정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화해의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 5장 디모데후서 2:12-13에는 ‘부인’과 ‘성실’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 우리가 성실하지 않더라도 주는 항상 성실하신 분이다. 우리의 불성실함을 성찬대 앞에서 고백함으로 짐을 내려놓고 주의 성실하심으로 위로함을 받아 영혼의 쉼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것이 성찬이 주는 의미이다. 6장 요한일서 3:20에는 우리가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과 하나님의 크신 마음이 언급된다. 우리가 스스로를 고발할 때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난다. 그때 하나님의 크심이 믿는 자에게 존재하게 되는데 이 표적이 성찬식이다. 7장 누가복음 24:51은 승천에 관한 말씀이다.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실 때 축복하며 떠나셨다. 축복은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동의이다. 기도는 경건한 일이고,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도 경건한 일이다. 더욱 경건한 것은 성찬식에 참여하는 일이다. 성찬식에 참여함으로 주님을 만나게 된다. 성찬대 앞에서 우리의 죄와 죄책에 대한 속죄가 이루어진다. 그것이 주님의 축복이다. 성찬 자체가 복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글은 성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고, 진지한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하게 해준다. 성찬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용서와 속죄의 기쁨을 갖는 복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성찬은 이렇게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 귀한 책을 번역한 이창우 목사님의 노고에 감사하며 일독을 권한다.
  •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과 의자를 엎으시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막 11:15-17) 분노하셨다. 그런 의분이 키르케고르에게 있었다고 보여 진다. 그의 심오함을 모르는 자들은 키르케고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무지에서인지 오해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적절하지 않다. 중세 로마 가톨릭의 부패함을 보고 그것을 비판하고 공격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자로 불리운다. 마찬가지로 키르케고르는 당시 부패한 덴마크 국교회를 비판하며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외치는 덴마크의 종교개혁자라 생각된다. 마틴 루터에게 비텐베르크 성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이 있다면, 키르케고르에게는 이 『기독교의 공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죄에 대한 불감증이 심화되는 요즘 한국 기독교와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만일 키르케고르가 이 시대에 존재했다면 어떻게 한국기독교와 한국 교회를 공격했을까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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