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화대학의 정신과 교수로 재직하며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임상 업무를 보조하거나 자신의 진료소에서 심리적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는 환자를 직접 치료했다. 또한 뉴욕에 있는 뉴스쿨대학교의 대학원을 비롯해 윌리엄제임스대학, 웰즐리대학 등에서 심리학을 가르쳤으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파라노이아 스위치(The Paranoia Switch)』, 『정상이라는 미신(The Myth of Sanity)』 등이 있다. 최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후속권으로 『Outsmarting the Sociopath Next Door: How to Protect Yourself Against a Ruthless Manipulator』를 출간했다.
양심은 늘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자연스러워서 우리 대부분은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양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아주 오랫동안 심리학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늘 실패해 온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집단과 그만큼 오래된 도덕적인 정신의 연합이라고 하는 두 거대한 집단이 서로 대결하는 양이 계속되어 왔는데, 양심은 그 둘 중에서 한쪽을 차지한다. 심리
양심, 오로지 양심만이 우리가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거나 절대자와 소통하도록 만들 수 있다. 양심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는 감정적인 유대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양심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신비주의자들과 진화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사안에서 서로 이견을 보이지만, 놀랍게도 사람의 정상적인 본성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에 기초한 의무감이 없는 사람들 즉, 심리학자인 나라면 소시오패스라고 부를 사람들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표현은 매우 흥미로웠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을 '잘 발달된 삶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이라고 불렀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달라이 라마는 세계무역센터 테러에 관해 "기술은 좋은 것이지만, 잘 발달된 삶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기술은 재
2002년 달라이 라마가 참석했던 과학과 정신에 관한 어느 회의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저명한 신경생물학자인 잭 페티그루(Jack Pettigrew)는 "다람살라 (Dharamsala, 티베트 망 명정부가 들어서 있는 인도의 도시)로 가는 길에 한겨울의 안개를 뚫고 올라가 눈부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오면서 정말 천국으로 가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행
그리고 당연히 황금률(Golden Rule)은 존재한다. 그 법칙은 바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상호성의 윤리를 말하며 이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간명하게 실천할 수 있는 도덕철학일 것이다. 공자가 말한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주지 말라."는 훨씬 더 오래 된 중국 격언을 기록한 것일 뿐이며, "남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해 주어라." 라는 예수의 말 역시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낄 때 우리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혹은 '자아동질적으로 느껴지고 삶의 만족도 높아진다고 말한다. 성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욱 큰 축복이 깃든다."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나는 심리학자로서, 끝없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하는 쓸데없는 집착은 양심의 결핍에서 생겨나며 이는 현실의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이 밀려오는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할 수도 있으며 진정한 친구들도 생길 것이다. 거짓되고 위험을 즐기는, 양심이 없는 소수들과 달리, 양심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온정과 위안, 분노, 혼란, 압박, 때로는 즐거움이 충만한 삶을 살아
서로를 향한 우리의 의무감인 양심은 우리가 가정과 전 세계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 양심은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며, 허울뿐인 무의미한 경쟁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 준다. 아주 큰 양심은 개인의 욕구와 도덕적 의무, 그리고 마음속의 정체성을 통합하여 올바른 행동과 우리 자신이 일치하도록 해 준다. 그 때문에 극단적인 양심은 우리가 행복으
도덕 추론은 우리가 도덕적 딜레마를 처리할 때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 도덕 추론은 결코 일관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도덕 추론은 시대와 성별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문화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지역이나 심지어 한집에서도 서로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테러리즘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내 이웃의 생각과는 약간 다를 것이며, 바다 건너 다른
누구를 믿을지 판단할 때는 당신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연기하지 않는지 살펴보라. 그런 연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일관되게 사악하며 터무니없이 부적절한 행동이다. 그 사람의 이마에는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써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런 두 가지 모습을 모두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대량학살자나 폭력적인 사람은 아닐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까운 친구로 지내거나 동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