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하게 열거된 듯 보이는 원소들에서 뽑아낸 이야기의 너비와 깊이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무협지의 무시무시한 무공과 〈매드맥스〉 ‘임모탄’의 마스크에서 ‘칼슘’을 상상하는 것은 기발하고, 커트 보니것 소설에서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에 복무한 ‘질소’를 발굴해 이를 실사화하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납’과 미국 ‘플린트시 물 사태’를 연결하며 그 저변의 인종차별을 정확히 짚어내고, ‘리튬’에서 다단계 하청과 불법 파견의 화학결합을 끈질기게 주시하는 한편 대체 에너지 효용의 이면을 폭로하고, ‘수소’에서 ‘젠더폭력’을 환기하는 과정이 노련하고 묵직하다. 사회의학자 김명희의 눈은 화학적 기호의 연관성이나 생의학적 병인론에 머물지 않고 사안의 사회문화적 원인, 그리고 이를 대처하는 인류 공동체의 대응 방식에까지 닿는다. 고통을 주고받으며 오늘의 가해자가 어제의 피해자일 수 있는 세상에서, 숙의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과 아이러니를 18개 화학원소로 가독성 있게 펼쳐낸다. 지금보다 나은 우리가 되고자 한다면 원소들에게 배울 일이다. 진심으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