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교(UCLA)의 영문과 교수.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주요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발표해 온 학자로, 중세 문학에 등장하는 심장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서인 『심장의 책』과 『왕가의 피: 중세 파리의 범죄와 수사 실화』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현재 아내인 페그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은 데다가 성격까지 불같은 카루주는 아내의 말을 믿어 주기는커녕 그녀가 르그리나 다른 사내와 통정했고 그 사실을 감출 작정으로 거짓 고백을 했다고 의심할지도 모른 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이 격분한 나머지 아내를 살해 하는 일은 종종 있었고, 이런 행동은 아내의 간통에 의해 유발 된 치정 범죄(crime of passion)라는 이유로 남편이 무죄 방면 되는 경우조차도 드물지 않았다
당시 강간이라는 범죄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보호자인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한 기물파손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법원의 기록을 보면 강간 혐의로 기소 당한 가해자들 중에는 교회에서 중책을 맡은 성직자들의 수가 다른 직종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데, 그들이 속세의 법정이 아닌 교회 법정의 재판을 받는 '성직자 특권'을 구함으로써 중형 선고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피에르 백작과의 세 번째 다툼과, 자크 르그리에 대한 적의는 두 종기사 사이에 가까스로 남아 있던 우정의 기억을 완전히 찢어발겼다. 자신의 불운을 옛 친구 탓으로 돌린 카루주는 "급기야는 르그리를 증오하고, 혐오하기 시작했다". 장 드 카 루주는 이 가증스러운 적수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평했 던 듯하다. 아르장탕의 궁정에서 르그리 본인을 만났을 때 그의 면전에서 아예 대놓고 규탄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누르포콩의 봉지를 아내의 지참금의 일부로 받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카루주는 행동에 나섰다. 르그리가 이미 오누르포콩을 상당 기간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토지의 매매 및 증여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소송을 시작했던 것이다. 1380년 5월이 되자 이 땅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너무나도 소란스러워지고 격렬해졌고, 급기야 그 소식은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