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가장 지독한 사회적 전염병이다. 굶주림은 자아를 잠식하고, 육체가 지닌 최소한의 존엄마저 피폐하게 만들며, 주변의 타인마저 파괴한다. 《체공녀 강주룡》의 압도적인 첫 장면은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강주룡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수면마저 앗아간 극도의 허기를 잠시라도 잊기 위해 그는 무언가를 씹어서 연하게 만들어 목구멍으로 넘기는 상상을 한다. 강주룡의 손은 목구멍으로 들어가고 그는 천천히 자신을 씹어 먹는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간수의 소리를 듣자 강주룡은 몸을 세우고 저항하는 인간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타인에게 폭력적이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를 잡아먹는 뒤집어진 인간, 하지만 저항의 존엄을 끝까지 상실하지 않는 인간. 그가 바로 강주룡이다.
1925년 최서해는 《기아와 살육》에서 굶주림을 통해 영혼이 파괴된 인간 야수의 모습을 기념비적으로 보여주었다. 대략 100년의 시차를 두고 박서련은 굶주림의 고통을 자신의 내면으로 삼키고 이를 반항의 원동력으로 소진하는 인간을 역사의 거대한 망각 속에서 발견해, 잊을 수 없는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최서해의 작명 감각을 살짝 빌려 와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아와 저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