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이전

작가파일

박지계
朴知誡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573년 출생
사망
1635년 사망
작가이미지
박지계
국내작가 문학가
1573(선조6)~1635(인조13). 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인지(仁之), 호는 잠야(潛冶)이다. 1606년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609년(광해군1) 좌세마 겸 서연관(左洗馬兼書筵官)으로 천거되고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으나 사양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1614년 호서의 신창(新昌)으로 이주하여 신창에 물러나 지내던 만회(??悔) 권득기(權得己), 포저(浦渚) 조익(趙翼) 등과 학문을 강마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신흠(申欽)에 의해 천거되어 사포서 사포(司圃署司圃),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성균관 사업(成均館司業)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2) 인조(仁祖)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을 추숭하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려 김장생(金長生)과 대립하였고, 시골로 돌아갔다. 1633년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어 「만언소(萬言疏)」를 올렸고, 1634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 1635년 아산(牙山)에서 운명하여 서산(瑞山)에 장사 지냈다가 청주(淸州)에 개장(改葬)하였다. 1668년(현종9) 충청남도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에 배향되었고, 1742년(영조18) 12월 문목(文穆)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잠야집(潛冶集)』 10권 5책이 전한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에게 한마디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