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아코디언』은 한국전쟁 직후 가냘픈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서울의 길거리로 내몰렸던 앵벌이 아이들의 생존투쟁기이다. 주인공 ‘동이’를 비롯한 앵벌이 소년들은 목숨을 겨우 부지할 수 있을 정도의 식량과 다른 패거리들로부터의 보호를 대가로 ‘양 목사’가 이끄는 조직으로부터 착취당한다. 전쟁이 남긴 지독한 상흔 속에서 한 사회의 도덕적 가치와 윤리적 금기는 필사적인 생존의 욕구 앞에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한국전쟁 직후의 서울 또한 그와 같은 도덕적 가치 물론이고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조차 기대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다.
하지만 참혹하고 비정한 세태에 굴하지 않고 ‘동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기어코 더 나은 삶과 인간적인 꿈을 향해 작은 발자국을 내딛는다. 그 아이들이 “도시의 유령”으로 묘사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언제나 길거리에 낮게 엎드린 그들의 존재가 행인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진정 “유령”인 까닭은 폐허와 재건의 시대를 함께 통과해왔으나 이제는 압축적인 경제 성장이 내뿜는 성공의 빛에 의해 가려진 존재들을 우리 앞에 다시 불러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처럼 좋은 소설은 이처럼 시대의 가려진 비참을 흥미로운 서사를 통해 다시 우리 앞에 맞세운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천명관의 『아코디언』 역시 그 일을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