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를 찾는 이들의 고충은 두려움·분노·슬픔 같은 내면의 아픔에서부터, 타인과 관계 맺으며 겪는 갈등과 번민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인간의 마음을 병리와 진단으로 환원해 이러한 다채로움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 한계를 넘어설 실마리는 시인 키츠가 제시한 ‘소극적 수용력’이다. 그는 모순된 인간 심성을 기꺼이 끌어안자는 존재론적 전환을 제안했고, 정신분석가 비온은 이에 응답하며 소극적 수용력의 범위를 사람 사이의 관계론으로 확장했다. 곤경에 처한 이의 곁에 머물며 그의 마음을 겸허히 상상하는 태도, 그것이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돌봄일 수 있다. 이 철학의 계보는 영국의 치료공동체 운동, 이탈리아의 정신보건 혁명,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를 거쳐,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의 인권 기반 정신건강 혁신으로 이어진다. 탁월한 작가이자 의사인 저자는 임상에서 정치·사회적 맥락에 이르는 층위, 인문학과 정신분석의 스펙트럼 사이를 오가며,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이 화두에 관한 귀중한 통찰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