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의 이중주”(「코끼리 시간 여행법」)를 연주하는 자의 손을 보라. “깊이가 없는 빛으로 채워진 살갗”(「견갑의수」)이란 대체 얼마나 어두운 “시간의 빛”(「하트 에이스」)을 함축하는가? 어둠과 어둠의 이중주에서 “빛의 울렁임”(「청보리의 밤」)이 일고, 빛과 빛의 이중주에서 “날카로운 어둠”(「잔혹 투명 구슬」)이 스밀 때, 시인은 종신토록 그 빛과 어둠을 노래하고, 춤을 추고, 마침내 쓰러지며 시를 쓴다.
모든 것이 시가 되리라는 믿음을 뒤로하고,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없다는 절망도 뒤로한 채,
비계(飛階)의 위태에 직립의 아슬을 더하여 시를 빚는 자,
“죽음과 삶에는 이음매가 없”(「원숭이 가면」)다는 사실 앞에서, “입의 기울기”(「생체-나무」)가 온전히 생의 물매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기울어진 틈으로 오해와 타락과 분노와 통한의 말들이 한없이 토설된다. 그건 “파멸의 동심원”(「암점」)에서 솟구치는 형적 없는 춤의 리듬. 그 리듬에 기대어 “나를 움직이는 파동들”(「한밤의 파레이돌리아」)에 혼신의 언어를 내어 맡길 때, 시간의 암점에서 태동하는 것은 모든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시다.
그러니 언어의 작두 위에 선 자가 채비할 것은 미래의 운산이 아니다. 절체(絶體)의 혼절은 이미 아닌 것이다.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이의 대위법이 리듬을 타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큰 호흡법”(「청보리의 밤」)이 필요한 밤이라면, 지금이 그때이다. 모든 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