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브에서만 나타나는 나를 떠올린다. 댄스 플로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머뭇거림이 비트 속에서 녹아내리고, 마침내 음악 속에서 길을 잃은 나. 그때 몸은 비트를 타고 흐른다. 한 번도 수치심에 굳어버린 적 없는 듯 파도치고 타오른다. 나는 그곳에 없으므로 그곳의 모두와 있다. 이는 매켄지 워크가 말하듯 일시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그 응축된 순간 속에 흐르는 정동에 대해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매켄지 워크는 레이브의 “옆으로 흐르는 시간”, 그곳에서 겹겹이 접혔다 펼쳐지는 환희에 대해 말한다. 그곳에서도 떨쳐지지 않는 쓸쓸함과 그곳에서야 형태를 얻어 일렁이는 욕망에 대해 말한다. 이윤을 추출하는 체계에서 비껴나 지도 밖을 탐험하는 불구의 몸들에 대해. 탈주한 흑인 노예와 퀴어와 이방인들이 마련한 세계에 대해. 이 나이 든 트랜스섹슈얼은 비트에 몸을 맡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건 오랜 시간 해리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레이브는 약속되지 않은 찰나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손짓한다. 그리고 『레이빙』은 음악 속에서 자신을 잃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들, 음악 앞에 구멍이 됨으로써 나 자신에 접속하는 이들을 향해 열려 있다. 『레이빙』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플로어에서 만나, 그 찰나의 가능성을 레이브 바깥의 세계로도 퍼트리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