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경남 김해 농가 차남으로 태어나 農事를 지으며 살아갔다. 고교 졸업 후 7년이 지나 아주 늦게 지방대학에 입학하여 은행에 들어 갔다. 막상 은행에 들어가 보니까 친구들은 이미 대리, 차장으로 진급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특별승진”을 하여 친구와 같이 되고 싶었다.
요트 타는 사람들이 “알부자”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 소문을 듣고 내 딴에는 특별승진을 해보겠다면서 거액 요트 예금 유치 섭외에 혼신 전력투구를 다 해보았다. 그러나 요트인들은 돈이 많은 알부자들이 아니었다. 단순한 “멋쟁이”들이었다. 결국 은행에서는 승진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채 정년으로 비참하게 퇴직을 해야만 했다. 은행 퇴직 후 집에서 놀고 있는데 옛 요트인들이 자꾸 한 번 해보라고 하여 재벌 회장들이나 하는 “한국윈드서핑요트협회” 회장을 12년간이나 해 봤다. 나이가 80이 넘어서도 “윈드서핑”을 타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두근두근 설레이는 윈드서핑』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