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생.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어렸을 적 꿈은 하루빨리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돈이 먼저였다. 스무 살 이후에는 언제나 글 쓰는 시간보다 돈 버는 시간이 길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 가난하고 지난한 날에서 지나간 불온을 기록하고자 『일인칭 가난』을 썼다.
가난이 그렇기 때문이다. 한번 맛보면 가난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그 정도 수입이면 넉넉한 편이라고 주위에서 날 추어올려도 내 기분은 전혀 넉넉하지가 않다.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제 비평은 임신 중단을 낙태라고 부르는 이들로 인해 그것의 권리가 박탈되고 유예되고 억압되며, 여성이 타자화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가 임신 중단의 권리를 실천한 여성에게 죄책감을 주입함으로써 죽은 듯 살게 하거나 죽게 만드는 현실을 말하는 이 시가이 시대의 페미니즘이라고 말한 겁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날 죽이고 나면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게 허락된 일탈이 상상 자해였다. 남겨질 엄마가 더 가난해질까 봐 죽을 수는 없었다. 죽지 못해 보내는 하루가 반복될수록 감정이 가라앉았다. 조금 부러웠던 친구들의 여행이 조금도 부럽지 않게 됐다. 최저 수준도 안 되는 기숙사만 탈출하면 행복할 것 같았던 실낱같은 희망도 감각할 수 없었다. 그냥 일어났으니까 일했고 일했으니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