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이전

작가파일

배다지
국내작가
작가이미지
배다지
국내작가
청간 배다지 선생님은 부산의 민족민주운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계신 분입니다. 선생님은 넓게 보면 4·19세대라고 할 수 있지만 중학생 시절인 1948년에 이미 남한단독정부수립 반대운동을 하셨고 4·19가 일어나기 이태 전에 국제신문사 기자 생활을 시작하셨던 경력으로 보면 4·19세대의 선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간 선생님은 산수 이종률 선생님의 1세대 제자로서 수일원에서 산수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4·19 이전부터 민족문화협회의 중심 인물로서, 4·19 이후에는 민민청의 간부로서 맹렬하게 활동하셨습니다. 6·25전쟁과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초토화된 민족민주운동이 4·19를 계기로 분출하여 통일운동으로 나아가자 이를 위험시한 미국과 군부는 5·16쿠데타로 그 흐름을 끊었습니다. 청간 선생님은 검거를 피하여 감옥살이를 면하였으나 1968년의 통혁당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고 출소 후에는 유신체제의 폭압 아래 드러나는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유신 치하에서 만들어진 악법,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 전력을 가진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얽어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청간 선생님은 정중동, 은인자중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1987년 6월항쟁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시작될 무렵, 선생님의 연세는 이미 50대 중반이었습니다. 1988년 선생님은 전민련 부산연합의 의장으로서 다시 민족민주운동의 일선에 서셨습니다. 그러다 1989년 국가보안법 등으로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변함없이 민주주의민족통일부산연합의 의장을 맡으시고 젊은 활동가들을 이끌었습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에게 한마디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