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9월 23일 사제 서품을 받고 11월 15일 한국 파견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한국에 도착하여 5월 13일 원주(原州, 현 원동 주교좌) 본당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사목하다가 넓은 강원도 지역의 선교 구역을 분할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뮈텔(G. Mutel, 閔德孝) 주교에게 이를 지속적으로 제안하였다. 1906년 8월 8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임명된 뒤 『예수 성심의 타벨라(Tabella SS. Cordis Jusu)』 창간에 힘썼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징집 명령을 받고 1914년 8월 9일 프랑스로 귀국하여 참전하였고, 1919년 10월 15일 용산 신학교로 복귀하였다. 1920년 8월 20일 에제봉(Hesebon) 명의의 계승권을 가진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5월 1일 종현(현 명동) 대성당에서 원산 대목구 사우어(B. Sauer, 辛上院) 주교와 함께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병인박해 순교자 26위 자료 수집, 한국인 사제 피정 지도, 『서울 대목구 지도서』 원칙 작성 및 출판 등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담당하다가 1926년 1월 17일 점심 식사 후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그 이튿날 선종하고 말았다. 1월 21일 명동 성당에서의 장례 미사에 이어 서울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