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간주된다. 그는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유명한 감독이자 순교자인 폴리갑(Polycarp)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의 수도인 리옹에 정착하기 전에 로마에서 공부하고 가르쳤을 것이다. 177년에 그는 로마 감독에게 몬타누스파로 알려진 엄격한 기독교 종파에 대해 보다 부드러운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이레니우스가 로마에 있는 동안 리옹의 감독이 감옥에서 죽고 이레니우스가 그를 계승하여 감독이 되었다. “교의학의 아버지” 또는 “교회의 최초의 위대한 조직신학자”라 불리는 이레니우스는 교회의 전통, 구속사, 신구약의 권위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에서 중요성 때문에 기독교회사에서의 의미심장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레나우스는 일생동안 영지주의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계획을 역사 신학 내에서 진지하게 설정하였으며 신약을 구약과 같은 권위로 보면서 성경을 총체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후기 자료에 의하면 이레나우스는 리용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던 202년에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