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열(辛觀烈)은 1849년(헌종15)에 부안군 내변산 봉래산 기슭의 촌가에서 부친 신동기(辛東夔)와 모친 함영남궁씨(咸悅南宮氏)의 차남으로 출생하였으며, 1906년(고종10)에 향년 57세로 부안군 상서면 청림정사에서 별세하였다. 본관은 영월(靈越)이며, 영월신씨 부안 입향조 신생(辛生)의 13세손이다. 자는 세군(細君), 호는 초은(樵隱)이다. 시문에는 노초(老樵), 동초(東樵), 초은산인(樵隱散人) 등으로 표기하였다. 어려서 백부(伯父)인 하석(霞石) 신동직(辛東稷)에게 수학하였다. 평생 공직에 나가지 않고, 청림마을 초야에서 경사(經史)를 연구하며, 독서하고, 시문을 저술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한편으로는 부안의 유림과 시계(詩契)를 맺고 부안의 경승지를 탐방하며 시문을 화답하는 것이 그의 일상(日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