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거사(樊 川居士)이며 경조(京兆) 만년(萬年) 사람이다. 당나라의 걸출한 문인으로 만당시기 독자적인 시풍을 형성하여 영사시와 서정시를 잘 지었 으며, 특히 철언절구에 뛰어났다. 문종(文宗) 태화(太和) 2년(828) 26세 때 진사에 급제했으며 홍문관교서랑(弘文館校書?)에 임명되었다. 후에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우승유(牛僧孺)의막부에서 일했으며, 궁궐로 돌아와 사관수찬(史館修撰), 사훈원외랑(司勳員外?) 등을 역임 했지만 우이당쟁(牛李黨爭)으로 인해 지방관으로 물러나 황주자사(黃州刺史), 지주자사(池州 刺史), 목주자사(睦州刺史) 등을 역임했다. 다시 궁궐로 돌아와 관직이 중서사인(中書舍人)까지 올랐으며, 만년에는 장안 남쪽의 번천에 별장을 짓고 한가한 생활을 즐기다가 병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