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이조李肇
이조(李肇, ?~835?)는 정확한 생졸년이 미상이다. 당나라 덕종(德宗) 정원(貞元) 12년(796)에 좌습유(左拾遺)를 지냈고, 18년(802)에 화주참군(華州參軍)으로 전임되었다. 헌종(憲宗) 원화(元和) 2년(807)부터 5년(810) 사이에 검남동천절도사(劍南東川節度使) 위단(韋丹)의 종사(從事)를 지낸 뒤, 입조해 대리평사(大理評事)가 되었다. 7년(812)에는 태상시협률랑(太常寺協律郞)으로 발탁되었다가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승진했다. 13년(818)에는 감찰어사로서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충임되었고, 14년(819)에는 우보궐(右補闕)을 더해 받았으며, 15년(820)에는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을 더해 받았다. 목종(穆宗) 장경(長慶) 원년(821)에 이경검(李景儉) 등과 함께 사관(史館)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예주자사(澧州刺史)로 폄적되었다가, 장경 3년(823)경에 다시 저작랑(著作郞)과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는데, 이때 『당국사보』를 찬한 것으로 보인다. 문종(文宗) 대화(大和) 연간(827~835) 초에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전임되었고, 대화 3년(829)에 자신이 추천한 간의대부(諫議大夫) 백기(柏耆)의 죄에 연루되어 장작소감(將作少監)으로 좌천되었다. 그 이후의 행적은 미상이다. 문종 개성(開成) 원년(836) 이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 저서로는 『당국사보』 외에 『한림지(翰林志)』와 『경사석제(經史釋題)』가 있는데, 『경사석제』는 망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