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40년 9월 27일,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 고향은 황해도이며, 가족이 황해도에서 평남 진남포로 이주 후 저부터 진남포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애매합니다. 해방 후 1948년 가족이 함께 북한을 탈출, 서울로 이주하여 대부분 서울에서 살았으니 서울이 고향인 셈입니다.
1963년 해군사관학교(17기)를 졸업, 해병대소위로 임관하여 해병대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65년 중위로, 1970년 대위로, 2회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하여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1973년 미해병상륙전학교(고등군사반)를 수료하고, 1978년 해군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1987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입학, 군 보직관계로 1991년 졸업(석사)하고, 1993년 고위정책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1982년 주호주 한국대사관의 국방무관으로 해외근무를 하였습니다. 1987년 1월 1일, 준장으로 진급, 한미연합군사령부 연습처장으로 근무하였으며, 특히 ‘을지-퍼커스렌즈’ 연습방법을 ‘사전에 준비된 통제 방식 (by pre-scripted messages)’에서 ‘실시간 상호작용(by realtime interactive)하는 워게임’으로 전환하는 일을 주무 담당하였습니다. 1989년 서북도서방어를 맡고 있는 해병제6여단장으로 백령도에 근무하였습니다.
1991년 12월 31일 전역하면서 한미연합사의 전투모의실에 참여, 전쟁연습 시 적군(敵軍) 역할을 하는 전문대항군을 창설하고, ‘대항군사령관’으로 취임, 15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한미연합사의 전구(戰區)급 지휘소연습에서 연합사를 상대로 전쟁(연습)을 수행하였으며, 한국육군, 해군 및 해병대의 워게임 정착 및 발전에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동시에 1992년, 워게임 운영을 주로 하는 ‘주식회사 싸이버텍(CyberTech, Inc.)’을 설립, CEO로서 미국의 워게임 운영 회사와 teaming 하여 한미연합사의 연습을 지원하였습니다. 한국합참에도 전투모의실이 설치됨으로서 ㈜싸이버택은 합참까지 지원하였습니다. 저는 이미 은퇴 하였지만, ㈜싸이버텍은 Modeling & Simulation 전문회사로 발전, 한미연합사와 한국합참의 연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역 후 한미연합사 대항군사령관으로, ‘싸이버택’의 CEO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한미우호협회, 태평양아시아협회, 밝고힘찬나라운동/21세기청년아카데미, 애국단체총협의회, 애국시민단체연합, 자유민주국민연합, 나라사랑기독인연합, 앞서가는시민들의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창설과 실질적인 운영 및 활동을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니 바쁜 시간을 보낸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1968년 결혼하여 슬하에 3남을 두었고, 이들은 모두 가정을 꾸려 5명의 손자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배우자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