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은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하는 시조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도 불린다. 신화와 전승 속 인물이어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대표적인 기록은 고려 후기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다. 『삼국유사』 「기이」 고조선조는 『위서』와 『고기』를 인용해,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하고 처음 조선이라 일컬었다고 전한다. 일연은 『고기』가 적은 건국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의문을 주석으로 달아 두었다. 오늘날의 단기 원년인 기원전 2333년도 조선 시대 『동국통감』의 계산에 근거한 전승 연대다. 기록은 그가 천오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1412년(태종 12)에는 ‘우리 동방의 시조’로 평양의 기자 사당에 함께 모셔졌고, 1909년에는 나철 등이 단군을 받드는 단군교(이듬해 대종교)를 일으켰다.
흔히 그는 쑥과 마늘, 개천절로 떠올리는 교과서 첫 장의 신화로 기억된다. 그러나 연대는 의심받았고 신비로운 장면은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이 이야기는 위기 때마다 다시 불려 나왔다. 이 책은 그 까닭을 이야기의 뼈대에서 찾는다. 하늘과 땅이 결합했고, 동굴의 어둠을 견뎠고, 때가 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단군을 한 개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무리가 함께 뿌리내린 기억의 상징으로 읽으며, 혼자 살아남는 법과 함께 뿌리내리는 법의 차이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