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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말
프롤로그_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는 한국을 위해 1부 선언의 시대 1장 아동권리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시작 2장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되기까지, 10년의 여정 3장 한국의 아동권리 태동과 발전 2부 규범 도입의 시대 1장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비준 [1991년] 세계아동정상회의가 열리다 | 한국은 어떻게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였을까 | 모든 과정에 NGO가 있었다 2장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제1차 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 (1991년 11월 - 1996년 2월) | 제2차 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 (1996년 3월 - 2003년 1월) 3장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 어린이·청소년 권리연대회의를 결성하다 | 시민사회, 아동권리 옹호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다 | 아동참여의 장이 움트다 3부 이행 발돋움의 시대 1장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 세 번째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과 이행 심의 (2004년 10월 - 2008년 6월) | 제3·4차 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 (2003년 2월 - 2011년 10월) | 한국, 아동권리모니터링센터를 설립하다 2장 아동권리에 기반한 접근, NGO의 변화 아동권리협약 이행에 목적을 둔 아동단체의 연대가 시작되다 | 최초의 아동보고서가 제출되다 3장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국제인권메커니즘의 통합적 활용 공통핵심문서 (Core Document) | 보편적 정례인권검토 (Universal Periodic Review) | 아동권리협약 제3선택의정서 4부 협약 이행의 시대 1장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 네 번째 제5·6차 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 (2011년 11월 - 2019년 9월) | 3년여에 걸쳐 제5·6차 심의를 준비하다 2장 아동권리 이행의 확장, NGO의 사명과 책무 24개의 NGO보고서와 4개의 아동보고서, 정부를 긴장시키다 | 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하여 활동하고, 함께한다 3장 아동, 정책의 대상에서 삶의 주체로 5부 앞으로의 길 1장 30년을 돌이켜본다는 것 2장 아동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될 때 3장 단 한 명의 아동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연대의 약속 에필로그_아동보고서, 10년의 기록 인터뷰 참여자 약력 부록1_아동권리협약 부록2_쉬운 말로 바꾼 어린이·청소년 권리 조약 미주 참고문헌 |
International Child Rights Center, In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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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아동권리선언(Geneva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의 영향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같은 해 한국에서도 아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그때까지는 한국 역시 아동을 성인의 부속물이나 종족 보존의 수단으로 여기는 성인 중심의 사회였다. 더욱이 도덕윤리의 근간으로 작용한 유교적 문화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례와 질서를 강조했고(장유유서), 이는 아동이 성인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한국이 처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도 이러한 시각을 고착하는 데 일조했다. 아동을 칭하는 ‘어린이’라는 용어가 있었음에도 ‘어린놈’ ‘어린애놈’ ‘어린계집애’로 아이들을 지칭하며 얕잡아보는 풍조도 만연했다(김정의, 1997).
아동을 수동적 대상으로 바라보던 종래의 관점은 1922년 천도교 소년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소년 보호를 위해 발표한 일곱 가지 당부의 말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천도교 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 최초의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거리 선전을 진행했고, 다음 해에는 소년운동협회가 어린이날을 기념하며 발표한 소년운동의 기초조항을 통해 아동을 성인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할 것을 강조했다. --- 「1부 선언의 시대, 3장 한국의 아동권리 태동과 발전」 중에서 “1989년,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되고 발효되기 전에, 1990년 상반기 언제쯤에 외교부에서 나보고 이걸 번역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다음에는 가입할 때 어떤 법률적인 문제점이 있겠는가, 국내법 이행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해서 몇 달 정도 시간을 주고 했던 것 같아요. 1990년 8월 21일에 내가 번역본과 그 보고서를 외교부에 줬다고 그 당시 수첩에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아동권리협약 번역을 본격적으로 제대로 다 한 건 내가 처음일 거예요. (다만, 내가 했던) 그 번역이 현재의 정부 공식본으로 그대로 채택되지는 않았고, 외교부 내부 검토과정에서 이런저런 수정이 있었고(……)”_2020년 12월 11일, 정인섭 교수 인터뷰(……) “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국제아동권리선언이 있다는 걸 알았고, 이게 앞으로 조약의 형식으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다음에 쭉 인연이 없다가 1972년에 교수가 되었는데, 교수 중에서도 법대 교수니까 그런 걸 잘 보죠. 그러니까 국제적인 동향, 무슨 조약이 성립되고, 비준되고 하는 상황을, 교수하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유엔총회에서 땅땅 치면 되겠다 하는 것까지 쭉 팔로우를 했어요. 그런데 나는 대학에서 주로 상법, 민사소송법, 지적재산권법, 국제통상법 이런 걸 가르쳤는데, 아동권리협약 같은 것은 국제법 중에서도 국제공법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하는 거다 해서, 국제법 선생님들이 들여다보고 알아서 하고, 나는 전공도 관련이 없으니, 끼워주질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팔로우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구요. 우리 학교에 국제법 선생님들하고 외교부 담당하는 분들하고 사제 간의 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 인간관계도 얽히고 해서. 나는 조약체결 검토하고 비준을 준비하는 동안에 크게 관여한 게 없어요.”_2021년 2월 8일, 송상현 (전) 회장 인터뷰 --- 「2부 규범 도입의 시대, 1장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비준(1991년)」 중에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제2차 심의를 거치며, 협약 이행을 위한 국내 NGO의 활동은 큰 폭으로 확장되었다. 일례로, 제2차 국가보고서에 제시된 것처럼, 아동권리 증진을 위한 아동단체들의 교육 및 홍보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된 11월 20일이 있는 주를 “아동권리주간”으로 기념하는 것은 NGO가 주도한 대표적인 성과에 해당한다. 한국의 제2차 심의가 끝난 후,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권리추진위원회 구성을 도모했고, 이양희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이 위원장이 되어 ‘아동권리주간’을 정부에 제안한 결과였다. 정부는 2003년 11월 19일 아동권리주간을 선포하는 기념식에 참석하여 “현재 운영되고 있는 어린이보호·육성추진협의회를 아동정책조정위원회로 발전시키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엔아동특별총회의 결과문서인 “아동들이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동 및 여러 단체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3부 이행 발돋움의 시대, 2장 아동권리에 기반한 접근, NGO의 변화 --- 「아동권리협약 이행에 목적을 둔 아동단체의 연대가 시작되다〉 중에서 2019년 5월, 한국 정부는 제5·6차 심의를 준비하며 관계부처 합동으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여전히 아동을 중심으로 한 권리 인식은 부족하고 요보호아동에 대한 국가책임은 미흡’했던 지난 10년의 아동복지 정책의 한계를 확인하며, 아동에 대한 국가책임 확대를 선언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공적책임 강화, 아동권리 보장 및 안전한 돌봄 강화, 생애초기부터 촘촘하게 돌보는 아동건강, 창의성·사회성 계발을 위한 놀이혁신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출생통보제, 민법상 징계권 폐지, 아동학대 대응체계 전면 개편, 입양의 공공성 강화, 지역사회 주도의 놀이혁신 확산 등을 주요 추진과제로 발표했다(관계부처합동, 2019). --- 「4부 협약 이행의 시대, 3장 아동, 정책의 대상에서 삶의 주체로」 중에서 그 밖에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변화의 요구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반복된 권고사항과 새롭게 드러나는 아동인권 이슈들은 아동의 현재 삶을 내밀하게 받아들여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다만, 보호대상아동에 대한 제한적 관점을 넘어 모든 아동의 권리 실현을 위한 예방과 지원, 보호와 촉진이 차별 없이 제공받아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즉 누구나 출생 즉시 공적으로 기록되고, 가급적 부모를 알고 부모와 함께 가정에서 자라며, 부득이하게 분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부모와 지속적인 만남을 보장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주상황과 장애, 폭력과 성착취, 노동과 소년사법, 거리 청소년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동으로서 권리 실현을 위한 더욱 특별한 조력이 요청된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출발. 아동권리는 단 한 사람의 아동도 남겨두지 않는 연대의 약속이다. 그렇기에 모든 아동을 아우르는 포용의 발걸음은 어떠한 아동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립에 이르렀으니, 이제 똑바로 나아갈 길만 남았다. --- 「5부 앞으로의 길, 3장 단 한 명의 아동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연대의 약속」 중에서 아동보고서 집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을 채택했다. 첫째로는 당사자인 아동들의 일반적인 아동권리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였다. 설문 문항은 아동권리협약이나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 정도, 현재 가장 많이 침해되고 있는 아동의 권리, 아동권리를 존중받기 위해 아동이 할 수 있는 것 등으로 구성했으며, 조사에 참여한 아동들이 간단한 권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콘텐츠를 포함하여 개발했다. 다행히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협조해주어 아동전용서비스인 주니버(주니어네이버) 이벤트 게시판에서 5월 한 달간 진행할 수 있었다. 둘째로는 워크숍이나 캠프 등 참여적 교육훈련 활동을 통한 의견수렴이었다. 아동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알게 해주고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활동이었다.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동집단을 수차례 만나 아동권리워크숍과 캠프를 진행했다. 협약이나 아동권리에 대한 개념과 필요성과 권리의 목록 등을 게임, 퀴즈, 토론, 역할극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알고 고민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활동을 개발하거나 기존에 개발된 활동을 집단이나 연령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보완한 후에 활용했다. (……) 아동보고서 집필을 위한 마지막 방법은 인터뷰였다. 국내적 맥락에서 아동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아동을 찾아 이들의 환경과 상황을 심층 인터뷰로 조사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여 보고서에 담고자 했다. 이를 위하여 워크숍이나 캠프 등에서 만나게 되는 아동 중 일부와 국내외 문헌조사 등을 통해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존재가 부각되지 못하는 아동을 찾아 만나고자 했다. 워크숍 등을 통해 만나는 아동들 외에도 장애아동, 청소년 미혼모, 학생운동선수, 난민아동, HIV/AIDS 감염아동, 연예인 연습생 등이 논의되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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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의 현주소
현재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아동뿐 아니라 보통의 아이들도 삶이 녹록하지 않다. 10명 중 3명의 아동이 과도한 경쟁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제아동회의에 직접 참석했던 한국 아이들의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시험에서 틀린 개수만큼 부모님께 맞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기회들, 자유로이 놀고 미지의 것들을 시도하고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기회는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제한됩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사회의 아동은 개성을 지닌 개별자가 아닌, 오직 공부 잘하는 ‘기계’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아동의 행복한 삶을 위한 변화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니다. 1922년 아동권리선언문을 시작으로 한국의 시민단체 및 NGO에서 아동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아동권리협약의 선언과 비준, 그리고 이행 과정을 들 수 있다. 먼저 1989년 유엔총회가 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한국도 1991년에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아동을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을 뗀 것이다. 아동권리협약, 선언에서 이행으로 그로부터 30년, 이제 한국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아동의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나라가 되었다. 우선 한국은 1991년에 아동권리협약 비준 이후 협약에서 명시한 대로 아동권리 이행을 위해 정책적 변화는 물론 범국민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남녀의 혼인 가능 연령을 동등하게 18세 이상으로 상향하고 입양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입양허가제를 도입했으며, 보호대상아동의 범주를 넘어 모든 아동에 대한 공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진전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학교 내 체벌금지와 더불어 민법상 징계권 폐지, 성착취 피해아동을 처벌하던 대상아동·청소년 규정 삭제,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등을 이루어냈다. 이제 우리는 “아동은 한 사회의 가장 약한 자이며, 그들이 안전하게 잘 사는 사회가 가장 살기 좋은 사회”라는 데 모두 동의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물론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러나 한국이 지난 30년간 어떻게 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해왔는지 그 역사를 다룬 최초의 단행본을 대중 앞에 내놓을 만큼 한국 사회의 아동복지 인식은 진일보했음 역시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