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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
삐에로와 국화 8월의 사상 서울은 천국 백로 선생 역성(歷城)의 풍(風) 화산(華山)의 월(月)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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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처럼 죽어야 할 사람도 있고 소크라테스처럼 죽어야 할 사람도 있다. 소나 개나 돼지처럼 죽어야 할 사람도 있다. 노정필이 전해 달라고 했다는 그 말을 상기하고 뭐니뭐니 해도 그가 나의 가장 열심한 애독자였다는 아쉬움을 되씹으며 나는 관할 파출소를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신고용지를 받으러 갈 참이었다.
---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 중에서 임수명이, “나는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노동당 당원이며 언제나 마음속에 대한민국에 대한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강신중은 어이가 없었다. 피의자 스스로 불리한 발언을 조작하고 있는데 변호사가 나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강신중이 거기서 심문을 중단해 버렸다. --- 「삐에로와 국화」 중에서 내가 중국 소주에 있었을 때의, 그 2년간은 연령적으로 나의 청춘의 절정기였다. 그 절정기에 나의 청춘은 철저하게 이지러졌다. 일제 용병에게 어떤 청춘이 허용되었을까. 용병은 곧 노예나 마찬가지이다. 노예에게 어떠한 청춘이 허용되었을까. 육체의 고통은 차라리참을 수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흘러간 물처럼 흔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이 받은 상흔(傷痕)은 아물지를 않는다. 우선 그런 환경을 받아들인 데 대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8월의 사상」 중에서 ‘내 집은 천국이라야 한다.’ 이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이 신념은 ‘세상이 모두 지옥으로 변해도 내 집만은 천국이라야 한다’로 강화되어 있기도 했다. 그는 철저하게 계산적(計算的)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계산의 바탕엔 그러한 신념이 있었고, 모든 계산의 방향은 그 신념의 달성에 있었다. --- 「서울은 천국」 중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던 민경호와 개울가에 엎드려 기도를 올리던 윤창순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그 꿈, 그 감격이 불과 5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다시 이 동굴로 돌아와 싸늘한 시체가 될 줄을 누가 알았는가. ‘3천만 가운데 나 하나만이 시인이라.’고 했는데, 3천만 가운데 나 하나만이 살아남았다는 슬픔을 새롭게 하며 신병준은 이젠 불제자(佛弟子)로서 백로 선생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백로 선생」 중에서 “느그들 모두 잘 지내라!” 진실로 위대한 메시지였다. 이제 나는 나의 죽음을 준비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의 메시지 는 뭐라고 할까. ‘용서해달라, 나를 용서해달라!’ --- 「역성(歷城)의 풍(風) 화산(華山)의 월(月)」 중에서 |
아이러니로 포착한 현실의 내면 풍경
“이병주가 자신이 포착한 인생의 진실을 소설로 기록하고자 한다고 했을 때 이병주의 소설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아이러니(irony)-예상 가능한 상황과는 반대되는 결과로서의 상황적 아이러니- 역시 이병주의 문학적 인식과 결부시켜보자면 일견 당연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병주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는 아이러니로 포착한 현실의 내면 풍경을 통해 인생의 진실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진실은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외형에 고스란히 담기지 않으며 오히려 내면에 감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생의 진실을 담아내고자 하는 이병주의 소설에서 우리가 예측하거나 기대한 바대로만 유지되지 않는 삶의 상황과 운명이 직조해내는 아이러니는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서로 다른 소재를 통해 진실의 인간적 기록으로서 소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일상의 삶을 세밀하게 다루다 “이병주의 소설 창작은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실상을 파헤친다는 목적으로 행해졌다. 그 스스로 정리한 것처럼 ‘생리적 기쁨인 8·15’, ‘절망으로 온 6·25’, ‘감격의 4·19’, ‘공포의 5·16’ 등 ‘역사의 고빗길에서마다 당한 사람’(송우혜, 「이병주가 본 이후락」, 《마당》, 1984)이었던 이병주는 주로 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이라는 담론 형식으로 ‘기록’해 왔다.” 주로 “역사적 경험을 기록하는 사가(史家)이자 회고의 증언적인 해설자”(이재선, 『현대한국소설사』, 민음사, 1991), “일제 말기 지식인들의 다양한 생존방식의 성격과 복잡한 내면을 깊이 파헤친”(김윤식·정호웅, 『현대한국소설사』, 문학동네, 2000)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이병주이지만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한 이후 동시대 일상적 삶의 영역을 세밀하게 다루는 대중소설 역시 꾸준히 발표했다. 인간의 삶에 내재한 원한을 ‘차가운 타인의 눈’이 아닌 ‘정감(情感)’으로서 기록하려는 이병주의 소설적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급적 인간의 실상에 가까운 형태로 창작되어서 인간 심부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소설이어야 한다는 문학적 인식이 잘 반영된 소설들이 이 책에 실린 6편의 작품들이다 .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삐에로와 국화』는 초월적인 세계나 삶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상을 다루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에 그것이 설령 비참하거나 추악한 것이라 해도 그 자체의 생동감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병주의 생각이 잘 담긴 중·단편 선집이다. 우리가 예측하거나 기대한 바대로만 유지되지 않는 삶의 상황과 운명이 직조해내는 아이러니를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