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너와 나의 노래
불어온 바람 울음의 문(門) 사랑의 빛깔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흐르지 않는 강(江) 또 하나의 노래 신(神)의 손길 그대의 이름은 빛과 그늘 돋아나는 생명(生命) |
李炳注, 호: 나림
이병주의 다른 상품
“실연이란 것 하곤 다르죠.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인생이 싫어진 거니까요.”
“그럼 마찬가지 아닌가.” “다르죠. 실연이란 단순한 감정 같으면 지금 그 사람이 내게로 돌아오면 해결이 되겠지만 이제 돌아와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핫하…….” 하고 노성필은 또 웃었다. “베르테르는 십팔 세기에 죽은 줄 알았더니 지금 난데없이 내 눈앞에 앉아 있구먼.” 현상은 불쾌했다. 모처럼 고백을 한 것이 역겨웠다. 그런 현상의 심정을 짐작했는지 노성필이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그처럼 얕잡아 보지 말란 말여. 어떤 여자가 배신했다고 해서 싫어질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인생이 아니어. 굶주림과도 싸워 보아야 하고, 형무소에 갈 정도로 죄도 지어 보아야 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맞아도 보아야 하고, 사방이 벽이 되어버릴 정도로 몸부림도 쳐봐야 하는 거요. 당신이 겪은 그 정도로 저항을 받았다고 사회를 포기하는 건 도대체 건방지단 얘기란 말여.” --- p.197 “그럼 넌 영영 이 시골에서 그냥 살 작정이냐?” “그럼은요. 태양과 더불어 눈을 뜨고 태양과 더불어 잠들고 맑은 공기와 새소리 속에서 이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요.” 기 영감은 미혜의 손을 만졌다. “손이 거칠은데?” “농부의 손이거든요.” “그러다가 안 서방이 딴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면?” “우리에겐 그런 소질이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아니?” “우리는 우리니까요.” 세 사람은 봄날의 대기처럼 활달하게 웃었다. “그러나.” 하고 기 영감이 말소리를 가다듬었다. “너희들의 생활은 그것이 목가지 생활은 아니다. 생활의 근원을 저 농토에 송두리째 의존하고 있는 농부와는 다르단 말야. 그러니 어디까지나 기분적인 생활이란 인상이 짙다. 세상이 그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만은 알아 둬야 해.” 미혜와 현상은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 p.399 |
귀향, 재상경, 그리고 망향, 그 여로의 끝
“이병주가 같은 해(1970)에 연재했던 『배신의 강』과 『허상과 장미』 두 작품이 공교롭게도 조국 근대화론의 이면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제시하면서 산업자본주의로의 변모를 은근히 꼬집고 있다면 『망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인간존재의 본질로서의 윤리의식 문제를 다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병주 장편소설 『망향』은 월간 《새농민》지에 연재(1970.5~1971.12)했던 청춘의 방황과 사랑의 윤리의식을 다룬 매우 대중성 있는 작품이다. 그 후 『여로의 끝』이란 제목으로 첫 단행본(경미출판사, 1978)을 낸 뒤를 이어 1980년에는 MBC에서 「종점」이란 제목으로 방영했고, 그 영향력에 힘입어 창작예술사(1984)에서 같은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여로의 끝』은 귀향, 재상경, 그리고 망향을 통해 청춘의 방황과 사랑을 보여주는데, 그 여로의 끝에 고향이 있음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근원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나타낸다. 사랑과 증오, 진실과 허위 “우리 시대의 외로움을 가장 민감하게 묘사하는 작가 이병주, 그는 이 소설에서 청춘시절 무엇을 위해 고뇌하며 방황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시의 물질문명과 병폐의 부조리 속에서 애인을 빼앗기고 ‘돈이면 다냐, 재벌이면 다냐!’고 절규하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증오, 진실과 허위의 실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창작예술사에서 나온 판본에 실린 소개글에 다소 격하게 표현되고 있지만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히 드러난다. 현대 산업사회가 비생산적인 인간 유형이 늘어나면서 사회불안과 소외의식이 만연된다고 본 에리히 프롬은 삶(to be) 그 자체보다도 소유(to have)를 열망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대중의 흥미를 끌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위기에 빠진 관념이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과 증오, 진실과 허위의 얽힘은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속살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는 생산지향성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세상은 밝아진다는 것, 이것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려는 생산지향성 인간상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여로의 끝』은 청춘의 방황과 사랑을 다루면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인간존재의 본질로서의 윤리의식 문제를 다뤘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과 같은 사랑을 꿈꾸는 것은 도시의 물질문명으로 뒤틀린 현대사회에 고향이 품고 있을 것만 같은 아련함이다. 따라서 이 소설이 인생이란 여로의 끝에 고향이 있다고 그리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