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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전은 전반적으로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이해하기 쉽게 소주제를 달아서 사건과 사실의 맥락을 부분적으로 조명한다. 그래서 때로 설명의 맥락상 그 연대순이 다소 일관적이지 못할 때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먼저 1장 〈근대 제주와 방근택의 성장기〉는 방근택의 출생 전후의 제주의 상황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했던 제주에서 책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성장한 그가 1944년 가족을 따라 제주를 떠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근대 제주의 분위기, 소학교 시절의 면모 등 그가 일찍이 서양의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2장 〈청년 방근택의 실존주의: 해방공간부터 1950년대까지〉는 부산으로의 이주, 그리고 6.25를 겪으면서 군인으로서 전쟁터에서 고뇌하던 방근택이 그 탈출구로서 실존주의 철학과 추상미술을 선택한 배경을 살펴본다. 전쟁의 상흔과 군대의 규범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지식과 예술에 기대었던 그의 모습,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명동의 다방 가에서 당시 주요 인물들과 어울리던 시절, 그리고 그가 박서보, 김창열, 하인두 등과 어울리며 앵포르멜 미술을 전파한 과정을 살펴본다. 3장 〈미술평론가 등단과 추상미술의 전도〉는 박서보의 도움으로 미술평론가로 등단한 과정, 그리고 1958년부터 현대미술가협회 회원들과 어울리며 지속적으로 추상미술을 옹호했던 그의 여정을 살펴본다. 국제추상미술과의 관계 속에서 현대미술을 주장하던 그의 입지와 배경을 돌아보고 주요 작가들과의 교류와 영향을 살펴본다. 4장 〈냉전 시대의 추상미술과 평론가의 역할〉은 방근택이 추상미술을 옹호하던 시기의 정치적 지형이 그의 활동에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1960년대 냉전이 한국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또한 작가들과의 갈등 속에서 미술비평의 정당성을 강조한 그의 활동을 살펴본다. 5장 〈전위예술과 도시문명론을 외치다〉은 방근택이 1960년대 중반부터 미술평론뿐만 아니라 도시와 문명 등 여러 주제로 확장해 나간 과정을 살펴본다. 포스트-앵포르멜을 기대하던 미술계에서 고군분투하며 전위적인 미술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박정희 정권의 공공예술 정책을 비판하는가 하면 ‘민족기록화’ 비판으로 작가들과 각을 세우며 미술평론가의 역할을 강조하던 모습을 그린다. 6장 〈검열과 감시의 시대〉는 반공 이데올로기 속에서 늘 검열과 감시에 시달렸던 상황을 다룬다.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감옥에서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평론 활동을 금지 당했던 과정, 그로 인해 미술계와 거리가 멀어진 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시대에 그의 일기에 담은 정치 비판과 개인적, 지적 고민을 통해 냉소적 태도와 허무주의가 커진 과정을 살펴본다. 7장 〈미술평론을 넘어서〉에서는 방근택이 1970년대 이후 발표한 평론과 글을 살펴본다. 치열하게 박서보와 단색화에 대한 검증을 시도하던 모습, 『현대예술』의 주간을 역임한 전후의 평론활동, 문예비평부터 도시미학, 그리고 지식인에 대한 책 번역까지 그의 폭넓은 관심사를 들여다 보며 근대주의자의 모습을 그린다. 8장 〈종말로서의 예술〉은 그의 일기와 글에 등장한 죽음, 허무주의 등을 주요 단서로 삼고 1980년대 이후부터 사망 시까지의 그의 지적 활동을 정리한다. 그가 1980년대에 가장 공을 들인 『세계미술대사전』 시리즈 집필부터 그가 쓰고자 했던 책의 주제 ‘종말로서의 예술’의 착상,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으로 커져간 허무주의와 제3세계의 평론가로서의 자괴감 속에서 번민하던 모습을 살펴본다. --- 필자가 방근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술평론가협회가 주최한 2011년 한국미술평론 6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이다. 당시 서영희 교수는 방근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에서 그가 전후 한국추상미술과 앵포르멜에 적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위적 평론가’였다고 묘사한 바 있다. 그 표현이 필자에게 다가왔다. 불안정한 사회에서 낯선 서구의 추상미술을 앞장서서 ‘전위적으로’ 싸우며 소개했다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의 약력에 나온 ‘제주 출생’이라는 문구는 필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필자가 나고 자란 곳이었고 20세기 제주가 겪은 혼란의 역사와 한반도의 격랑 속에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도 어려웠지만 미술평론가가 된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그날의 심포지움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일로 인해 본격적으로 자료조사에 나선 것은 2019년이다. 방근택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주로 1950-60년대 앵포르멜 미술과 추상미술의 전개를 다룬 글에서만 언급될 뿐 그의 유족이나 개인적 배경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영희 교수, 윤진섭 평론가, 김달진 소장 등을 만나서 묻는 것으로 출발했다. 김달진 소장으로부터 방근택이 소장했던 책들이 인천대학교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들었고, 윤진섭 평론가로부터 책 기증의 배경에 방근택과 가까웠던 주수일 교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리서치가 시작되었다. 방근택의 글과 관련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서서히 그의 삶의 윤곽을 잡고 있던 2019년 가을 삼성미술관 리움의 자료실에 유족이 기증한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움이 소장한 자료를 통해 결국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미망인 민봉기 여사와 연결이 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 방진형, 그리고 방근택의 여동생 방영자, 이종사촌 정인숙과 정경호, 조카 여서 스님 등 유족을 만나며 그의 글에서 파악하기 어려웠던 빈 공간들이 채워졌고 사진과 그림 등 여러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 평전을 엮는 동안 필자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넘은 공간의 공유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 필자가 수년 전 집을 마련한 제주시 건입동은 바로 방근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문통과 산지항이 위치한 곳이다. 필자의 집에서 골목길을 따라 2분 정도 걸어가면 그가 태어난 생가이자 외할머니 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동네에 자리를 틀 때 방근택의 생가가 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우연한 선택이 운명적인 만남이 되었고 이 책의 동력이 되었다. 그가 걷고 뛰어다녔을 집, 학교 그리고 산지와 칠성통을 다니며 90년전 근대 제주의 삶을 상상하곤 했다. 산지천변을 거닐며 근대제주의 유적을 보다보면 다시금 이 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열의가 생겼다. - 저자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