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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소설쓰기는 두 번째 삶 · 4
아내의 반전 · 9 은근한 낭만 · 27 삶이란, 우주의 룰렛 · 45 당위가 아니라 신념일 뿐 · 65 다만 시절인연을 따라 · 85 방심은 금물 · 105 재천(在天) · 131 다래끼 소동 · 159 어떤 24시간 · 177 길을 묻다 · 201 해설 | ‘흔들리는 몸’의 수사학과 남루한 생에의 위로 · 윤애경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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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편다. 노인의 양손 안에는 땀으로 흥건한 손수건이 들어 있다. 땀에 젖은 손바닥을 매번 닦아주다 내가 끼워둔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인은 주먹을 늘 꽉 쥐고 있다. 마치 갓난아기가 주먹을 쥐고 있는 것처럼.
엊저녁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을 전하더니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배선실 창문을 거세게 두드린다. 나는 어쩔까 잠깐 망설이다 기어이 배선실 창문 아래로 목을 밀어넣어 밑의 장례식장을 바라본다. 내가 있는 곳은 3층인데 그렇게 내려다보아야 장례식장 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인이 곧 있을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러고 있다. 무의식적인 습관이다. 이제 나는 그 어떤 삶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또 그 어떤 죽음도 두렵지 않다. 진작부터 딸애를 훈련시켜야 했었다. 감정은 무시할 것이 아니라 조절해야 하는 것임을. 현실이 못 견디게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지나간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시켜야 했었다. 누구나 자기 몫의 어둠을 안고 살고 있음을 몸소 보여주어야 했다. 그랬다면 딸애는 어쩌면, 그 사건을 극복해냈을지도 모른다. 영성치유자의 가르침대로 나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매일 수행했고, 지금도 수행 중이다. 그 가르침은 내 영혼을 꿰뚫어 내게 어떤 것을 조용히 일깨웠다. 일종의 ‘멈춤’과 ‘내려놓음’ 같은 것. 나는 하루도 딸애를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저절로 눈시울이 젖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고통에 붙잡혀서 살지는 않는다. 절망이나 후회, 두려움도 내려놓았다. 그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이 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때가 되면 옮겨가게 마련이다. 우주의 어딘가로. 그들이 비가 되었거나, 흙이 되었거나, 바람이 되었거나… 다, 괜찮다. 그들은 단지 조금 먼저 여행을 떠난 것이다. 삶은 조금 먼저, 조금 늦게, 그 차이일 뿐이다. 누구나 불확실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매 순간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내게 매일의 삶이란,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게 다가올 죽음이란, 또 다른 모습으로 계속 이어질, 첫날이다. 운구차가 막 출발하고 있다. 빗줄기가 시원스럽게 실로폰 가락처럼 대지를 두드린다. 아직 살아 있는 자의 눈물이 요란스럽게 사방에 흩뿌려진다. 나는 마음의 손을 가만히 흔든다. … 수고, 했노라고. 그 순간 또 딸애가 생각난다. 나는 가만히 읊조린다. ‘딸, 잘 지내고 있지? 우리 이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꼭!’ --- 「삶이란, 우주의 룰렛」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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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루한 현실 벗어나 우주적 존재로의 회복 꿈꾸는 『삶이란, 우주의 룰렛』
2010년 『경남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후 경남문인협회, 경남소설가협회, 진해문인협회 등에서 작품 활동을 해온 최미래 소설가가 데뷔 11년 만에 첫 소설집 『삶이란, 우주의 룰렛』을 출간했다. 최미래의 『삶이란, 우주의 룰렛』에 수록된 작품들을 일별하다보면 무엇보다 병원이라는 공간과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생의 가운데를 건너가는 중년 여성들이 육신의 병증으로 병원을 드나들며 고군분투하는 상황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최미래 작가는 자신의 첫 소설집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담아놓는 가운데 중년 여성들의 흔들리는 몸이 풀어놓는 저마다의 삶의 굴곡들을 응시하는 것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담담히 위로하고 다독이며, 그들이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어떠한 두려움에도 얽매이지 않고 이 순간에 충실하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중년 여성들의 흔들리는 몸에 관한 작가의 깊은 응시와 사유는 삶의 진실에 가닿는 과정이거니와 우주적 존재로서 온전히 자기 삶을 살아가는 존엄한 인간으로의 회복에 관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삶이란, 우주의 룰렛」에서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이다. ‘나’가 일하는 혹은 살아가는 이 공간에는 여섯 명의 중증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 외부와 거의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간병인의 생활 역시 생의 활기를 불러일으킬 어떠한 극적인 사건도 없이 지극히 고요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사실 평화롭지 않다. 특히 ‘나’가 간병하는 노인의 몸과 낯선 환자의 기저귀를 처리하는 마른 장작 같은 자신의 몸을 통해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암울하게 소환하게 되며, 자신의 삶은 기꺼이 제 몫의 풍랑을 묵묵히 견뎌내고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병실 환자들을 통해 깨닫는다. 중년 여성의 흔들리는 몸이 가닿는 과거의 아물지 않은 기억들을 통해 삶을 사유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재천(在天)」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중년 여성이 헬스장에서 당한 우연한 사고로 자기 뇌에 자리잡은 중증질환을 발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24시」에서도 중년 여성의 흔들리는 몸은 과거의 아물지 않은 기억을 소환해내고 일상의 균열을 직시하게 한다. 이 작품은 코로나19 상황으로 일거리가 없는 방과 후 교사 ‘경선’이 친정어머니의 산소에 들렀다가 발목을 접질려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또 「다만 시절인연을 따라」는 평범해 보이는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면서, 회피해왔던 어린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을 소환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나날의 삶 속에서 걱정과 절망,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위태롭게 흔들렸던 그녀들의 몸은 남루한 현실 속 자기부정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우주적 존재로의 회복을 꿈꾼다. 그녀들의 흔들리는 몸을 응시해온 작가의 시선은 그녀들이 거쳐온 쉽지 않은 여정에 기꺼이 동행하며 우주적 존재로의 귀환을 지켜봐주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며 자기부정을 겪는 숱한 삶들에 귀 기울이고 있다. 중년의 작가가 세상에 처음으로 묶어내는 이 과정의 기록들은 그래서 더욱 따뜻하고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