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욕보이다니
불길한 예언 하늘이 정한 이치라고? 늙은 장수의 수염을 뽑다 분노가 하늘을 찌르다 흥왕사 행차 날 문신의 관모를 쓴 자는 모조리 죽여라 우리 집으로 가자 사라진 형제 송악산 도깨비불 『문신의 나라 무신의 나라』 제대로 읽기 |
깜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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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최대의 격변기, 무신정변
고려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자주적으로 민족 통일을 이룬 나라다. 거란에 패한 발해 백성들까지 모두 끌어안음으로써 그야말로 온전히 민족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건국 초의 고려는 그 어느 때보다 다른 나라에게 당당하고 진취적인 태도를 취했다. 자신들의 신하 국가가 되라고 요구하는 거란에게는 뛰어난 외교 기술로 맞섰고, 여진족이 쳐들어왔을 때는 귀족에서 양민, 천민까지 모두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웠다. 그 덕분에 수십 년 동안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가 지속되었다. 그런데 평화가 너무 길었던 걸까? 언젠가부터 문신들은 슬슬 나랏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수백 칸이 넘는 집을 짓고, 벽에다 금가루로 그림을 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멋진 정자를 지어 놓은 채, 송나라에서 들여온 고급 차를 마시고 시를 읊조리며 세월을 보냈다.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한 채 배를 두드리며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있는 문신들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무신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문신들은 임금 옆에서 아양을 떨며 노닥거리기만 하는데도 자손 대대로 관직을 물려주며 권력과 부를 쌓는 반면에, 무신들은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빠듯했기 때문이다. 솥이 끓으면 넘치는 법! 무신들의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울분이 1170년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른바,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문신은 하늘, 무신은 땅이라고? 고려 시대에는 문신 위주로 정치가 이루어져 무신들의 지위가 매우 낮았고, 그만큼 처우에서도 엄청난 차별을 받았다. 무신에 대한 차별 대우는 의종 때에 가장 극심했는데, 의종은 별궁과 정자, 사찰 등 놀이터를 짓고는 거의 매일 문신들과 놀이를 즐기고 술판을 벌였다. 그때마다 무신들은 임금과 문신들의 놀이판에 경비를 서는 호위병으로 전락했다.『문신의 나라 무신의 나라』에서는 문신과 무신의 차별, 그리고 문신이 누리는 권력의 대물림(음서제) 등의 상황을 통해서 무신정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무신의 아들 두남이와 문신의 아들 윤재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만, 문신은 우대하고 무신은 업신여기는 풍조 탓에 시시때때로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 어른들의 싸움이 곧잘 아이들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기 때문. 어른들이 들이대는 이중 잣대를 몹시 못마땅해하면서도, 윤재와 두남이는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끈끈하게 우정을 키워 간다. 여기에 백정(농민)의 딸 다녕이가 둘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며 관계를 단단하게 이어 준다. 한편, 문신들과의 지나친 차별 대우로 분노가 쌓여 가던 무신들은 세상을 뒤집어엎을 기회만 호시탐탐 엿본다. 그러다 마침내 왕이 절로 행차하는 틈을 타 정변을 일으킨다. 그 바람에 문신과 무신은 하루아침에 처지가 뒤바뀐다. 비록 어른들은 원수가 되어서 서로 칼을 겨누지만, 두남이와 윤재는 그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우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마지막의 연등 장면에서는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다 함께 더불어 살기를 꿈꾸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다. 너나없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무신정변은 고려 전기에 문벌 귀족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넓은 계층으로 퍼뜨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덕분에 이의민 같은 천민 출신의 장수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백성들은 자신들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슴속에 품었다. 실제로 한동안은 신분이나 가문을 따지는 일이 줄어들고, 관리를 뽑을 때도 가문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은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행운이었을 뿐, 고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어난 변화는 아니었다.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풍토에 맞서서 정변을 일으켰지만, 무신들 역시 권력을 손에 쥐자 자기들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심지어 무신의 친척과 고을의 수령들까지 가세해서 농민들의 땅을 함부로 빼앗거나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걷는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여기에 반발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고려 시대 가운데 무신 정권이 다스리던 시절에 우리 역사상 민중 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안타깝게도 새롭게(?) 열린 세상에서마저 고려의 백성들은 계속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추천의 말’에서 배성호 선생님이 밝히고 있듯이, “문신이건 무신이건 백성들의 삶은 생각지 않고 서로 권력만 차지하려고 안달”을 하는 바람에 그 사이에서 살기 힘들어지는 건 언제나‘백성’들이었다. 크나큰 희생을 치르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위정자들의 이권 다툼으로 백성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는 것 없이 팍팍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자신의 권익을 챙기는 데만 욕심내지 말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그리운 요즘이다. 윤재와 두남이, 다녕이가 소망하는 것처럼, 너나없이 다 함께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이룰 수는 없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