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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인간
만년필 전염병 아담의 사과 재택근무 검은 숲 블랙 미러 노아의 말 만남과 헤어짐 어둠 속의 접촉 손때 블랙홀과 웜홀 시간과 방 극야 어두운 방 미아 먹 만드는 사람 검은 흙 방화범 쿠로 신드롬 큐레이터의 오후 사진가의 이메일 중에서 동굴로 들어간 사람들 우표를 들여다보며 유서 병원 블랙박스 쓰기와 읽기 재 개의 얼굴 수장고에서 어떤 설계안 검은 지도 혹 꿈 야간산행 전시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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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210미터까지 올라갔을 무렵, 에리카 지몬과 헬무트 지몬은 걸음을 멈추었다.
--- 첫 문장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라인 강 동쪽에 위치한 산악 지역으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속한다. 길이는 160킬로미터, 면적은 6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이곳이 흑림(black forest), 즉 검은 숲이라고 불리는 것은 30미터 이상 울창하게 솟아 있는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때문에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빽빽한 침엽수의 그림자로 숲의 내부가 어두운 데다 지형이 미로처럼 복잡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전설과 신화가 탄생하는 영감의 장소가 되었다. --- p.25 자, 여기서 빛을 어둠으로부터 분리했다고 하시지요? 태초에 먼저 어둠이 있고 거기서 빛이 생겨났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손을 대시기 이전의 이 어둠은 바로 인간의 원죄, 제가 말씀드린 부정한 검정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자꾸 그 어둠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어요. --- p.33 나는 큐레이터가 내민 도록의 서문을 다 읽고 책장을 넘겨 전시 전경을 촬영한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천장과 바닥 사이에 옥양목, 실크와 같은 무명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삼실을 뜨개질해 만든 향로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리석과 우레탄폼 등 하얀색으로 마감된 다양한 설치물들이 보이고 전시장 한편에는 설탕, 밀가루, 비누, 소면, 물감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색 사물들을 나열해놓은 진열대도 있었다. “전시가 끝날 무렵에는 바닥 색깔이 달랐어요.” 큐레이터가 말했다. --- p.43 이렇게 해서 지구에서 광속 5200만 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M87 성운의 블랙홀은 우리 앞에 상상이나 가설이 아닌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이후 과학자들을 괴롭혀온 질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라는 과제에 하나의 답을 선사해주었다. --- p.49 “검을 현 자, 어떻게 쓰는지 알아?” 노트에 의미 없는 낙서를 하던 현이 무심코 묻더니, 스스로 답했다. “이렇게, 작을 요 자가 밑에 있는 글자거든. 실오라기 하나가 실타래에서 끊어진 거야. 그런 아주 작은 물체가 하늘 위로 높이높이 올라가는 모습이야. 끈 떨어진 연이 멀리 날아가버린 것처럼. 산꼭대기에서 누가 손을 흔들면 점 하나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저만치 거뭇하니 뭐가 있기는 한데 잘 안 보인다는 뜻이래. 아득하고, 까마득하고, 그런 거.” --- p.60 로마의 황제 이름.([예술가] 항목 참조) 2. 이탈리아어로 검정을 의미하는 단어. 3. 전 세계에 존재하는 검은색 고양이 중 가장 흔한 이름 1위.(참고로 2위는 쿠로, 3위는 플루토다.) 1969년 이탈리아의 동요 콘테스트에서 「검은 고양이를 원했어(Volevo un gatto nero)」라는 노래가 3위를 수상한 바 있다. --- p.73 지도는 경계와 구획이 있어야 제대로 기능한다. 그러나 사실 본래의 자연적인 땅이란 경계가 없는 것이다. 국가의 구분도 지역의 구획도 없는 상태. 태초의 흙처럼, 아직 어떤 형상도 되지 않은 진흙처럼 말이다. 지도란 정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계 지은 가상적 구조다. 마치 땅따먹기를 위해 분필로 그어둔, 언제든 지워지거나 수정될 수 있는 선처럼. --- p.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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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이라는 단어 하나가 불러낸 장면들
길 잃어볼 만한 어둠을 더듬다!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은 검정을 차례로 프랑스어 Noir, 독일어 Schwarz, 일본어 Kuro, 한자 Hyun로 호명한 이름의 책이다. 제목에 든 함의대로, 다양한 시대와 공간의 시점을 통해 ‘검정’을 탐구하는, 미술가 김영글의 오랜 결실이다. 타투, 동굴, 블랙홀, 먹, 블랙박스, 검은 고양이, 만년필 등 여러 검은 존재들과 예술작품들을 경유하며 삶의 흔적으로서 검정이 지닌 여러 가지 표정을 포착하는,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이 책을 읽는 경험이 발걸음하지 않은 하나의 전시를 충실히 둘러 살피는 경험일 수도 있겠다.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은 노아noir와 발음적 유사성을 가진 노아noah라는 성서의 인물을 불러내 안식과 검정, 성과 속에 해당하는 각각의 검정을 논하기도 하고, 검은 현이라는 외자를 이름으로 가진 죽은 연인을 회고하는 서술자를 통해 기억과 망각, 존재 인식의 양상을 그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허구적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실재성이 중간중간 침투한다. 나는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하나 마나 한 이야기들을 큐레이터에게 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검은색이라는 테마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현에 대한 기억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다이어리를 펴자 검정, 시간, 손, 때, 이런 단어들이 적힌 것이 눈에 들어왔고…… 「손때」에서 검정은 하나의 빛깔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빛의 부재, 악, 침울함, 암담함, 정체 불명을 뜻하는 데 아주 오랜 기간 요긴하게 쓰여왔다. 5300년 전의 냉동인간을 스캔하면서 발견한 검정 얼룩들, 죽은 연인에게 선물했던 만년필, 유년 시절 키우던 개의 검은 빛깔, ‘검은 죽음’이라는 뜻의 흑사병과 코로나 바이러스, 종양과 신생아의 초음파 스캐너 사진…… 부지런히 페이지를 넘겨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힘이 센 이미지들은, 분명 검정의 정체 불명성이 불러온 암담함과 악의 역사를 짚어낸다. 그러나 현재하는 서술자의 입에서, 또 중간중간 존재를 드러내는 저자의 시선에서, 검정의 유구한 정체 불명성은, 함부로 정의할 수 없음, 재단되거나 타자화될 수 없음, 즉 생과 약동으로도 그 가능성을 더해간다. 화이트큐브 속의 검정은 때에 지나지 않지만, 지구에서 광속 5200만 년 떨어진 블랙홀은 빛의 부재가 아니라 압도적인 존재 자체이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지만 위풍당당하게 기록되어야 할 무엇이다. 사진이라는 빛의 예술은 어둠에서 탄생했으며, 나보코프는 카프카에 대해 가르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에 연민이 더해진 것이 예술이라고 단언한다. 검정을 파헤친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의 도판이 흑백이 아닌 총천연 컬러로 인쇄된 점은 흥미롭다. 볼드한 검정으로 적힌 글자뿐 아니라 이 올컬러의 도판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충분히 검정을 들여다보게 되며, 어떤 검정도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만다. 송연먹의 특징이 뭐냐면 아주 오묘한 검은색이 난다는 거야. 밤하늘의 색깔로 보자면 카본으로 만든 건 한밤중의 밤하늘 색깔이죠. 유연먹은 뭐냐. 석양의 색깔이야. 해 지고 났을 때의 색깔. 까맣되 붉은빛이 돌아. 그리고 송연먹은 해뜨기 직전의 밤하늘 색깔. 까맣되 푸른 빛. 색감 없는 사람이 보면 그냥 다 똑같은 까만색인데. 유심히 보면 참 다르지. 「먹 만드는 사람」에서 |